정부가 21일 발표한 '민간복합도시개발 특별법' 에는 토지수용권 부여, 출자총액제한 예외 인정 등 그간 기업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각종 규제 완화 조치가 상당 부분 담겨 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분배에서 재벌 중심으로 전환한 것 아니냐'고 지적할 정도다. 재계는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총수의 회동, 해외 순방 동반 등 잦은 '스킨십'을 통한 교감이 현실화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도시 건설 과정에서 해당 기업에 돌아가는 막대한 개발이익으로 인해 특혜 시비가 이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 밖의 당근
정부는 대상토지를 50% 이상 협의 매수한 기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토지 강제 수용권을 부여키로 했다. 원활한 사업 시행을 위해 실제 토지 수용 작업은 해당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대행해 주도록 했다. 기업은 수용 권한을 행사하되 '알박기' 등에 대한 골치 아픈 토지 수용 집행은 자자체가 대신 해 주는 셈이다.
사업 시행 기업에게 토지처분 및 주택공급 자율권을 부여해 투기지역 밖에서는 해당 기업이 조성 토지와 공동주택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한 것도 큰 혜택이다. 5월 삼성전자가 추진했던 아산 탕정 기업도시가 당초보다 축소된 것도 이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기업이 직접 사용하는 토지에 한해 30%의 개발이익을 보장해 주기로 해 기업도시의 사업성이 크게 높아지게 됐다.
기업도시 투자분을 출자총액제한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신용공여한도 적용의 예외로 인정하기로 한 것도 기업의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초기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매수할 토지에 대해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을 받아 토지상환채권도 발행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정부는 기업도시가 혁신도시와 달리 개발이 덜 된 지역에 지어진다는 점을 고려, 교육 관광 레저 분야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자족도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립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 외에 외국 교육기관의 유치를 허용키로 했다. 또 관광레저형의 경우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경마·경정·경륜장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돈 될만한 사업'은 모두 허용한 셈이다.
부작용과 특혜논란
정부는 연내 시범 사업지 1∼2곳을 선정한 뒤 내년 2월 말까지 관련법을 정비, 기업도시 건설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내년 6∼7월 기업도시 구역지정을 마치고 2006년 6∼7월 실시계획 승인 절차를 거쳐 2006년 말 착공할 예정이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위원 20∼30명 규모의 민간복합도시 지원위원회가 구성돼 기업도시 기본 정책과 제도, 구역지정 등을 심의·지원하게 된다. 하지만 기업도시는 그 동안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하지 못했던 기업 규제 해제 조치를 기업도시라는 특수 공간에 국한해 시행하겠다는 것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개발과정에서 지가가 급등함에 따라 주변지역에서의 투기 바람이 불 소지도 크다.
500만평의 기업도시 건설에는 3년간 28조원의 재원이 필요해 재계 상위 10위내 기업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 대기업에 대한 '역특혜' 시비도 우려된다.
부동산 업계는 원주 포항 군산 익산 등 기업도시 유치 후보지를 중심으로 땅값이 들썩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시행 기업에 적정한 개발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업도시 성패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 기업도시란
산업단지와 연구소를 중심으로 주택, 교육, 의료, 문화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들어서 있는 도시를 말한다.
일본의 도요타시와 미국의 실리콘밸리 등이 대표적인 기업도시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0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안하면서 투자활성화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논의가 시작됐다. 기존의 산업단지와 다른 점은 도시 자체가 자족적인 복합기능을 갖춰 기업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
도요타시 등 외국의 기업도시는 자연스럽게 형성됐지만, 전경련은 기업이 개발주체가 돼 토지수용권 등을 갖고 작은 규모의 도시 하나를 통째로 만드는 개념의 기업도시를 제안했다. 이 때문에 자칫 개발이익에 대한 배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소지가 크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대기업 10여곳 "입맛 당기네"
21일 기업도시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업계의 기업도시 건설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현재 기업도시 건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10여개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과 금호가 산업·물류 복합형 기업도시나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건설을 위해 입질을 하고 있으며, 한화 롯데 에버랜드 등이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건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특히 서남해안의 일부지역을 관광레저도시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현대는 토지 수용이 필요 없는 서산 간척지에 골프장 등 레저도시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경우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어떻게 확정되는 지에 따라 참여 여부가 유동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아직 상당수 기업들이 관심 표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출자규제나 신용공여한도의 완화, 학교나 의료기관 설립권 부여 여부, 각종 세금 지원 등이 확정 돼야 각 기업들이 기업도시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이날 건교부가 발표한 '민간복합도시개발특별법'에 대해 원칙적으로 환영하면서도 기업에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부항목이 빨리 확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학교과 병원 설립권을 부여하고 기업도시 건설용 투자에 대해서는 출자총액제한제의 예외로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세금감면, 신용공여한도 규제 등에서 경제자유구역에 준하는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또 신행정수도로 확정된 곳을 제외한 충청권에 대해서도 기업도시 건설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0% 협의매수 시 토지 수용권 부여에 대해서는 협의 매수하는 과정에서 땅값이 올라 오히려 기업에 불리해질 수 있다며 전적으로 토지 수용권을 부여하든지,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기업의 위탁을 받아 수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개발이익 중 30%만 기업이 취하고, 70%는 공공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도록 한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비율이 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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