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0일 국가보안법 개폐의 최대 쟁점인 '정부참칭' 조항 삭제와 법 명칭 변경을 수용할 가능성을 언급함에 따라 국보법 논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환영 입장을 밝힌 데다 박 대표의 언급이 여당 내 '대체입법'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여야 내부사정이 여전히 복잡하다는 점이 낙관을 불허하지만, 감정싸움으로만 치닫고 있는 국보법 정국에 일단 협상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열린우리당, "큰 틀은 與野 비슷"
국보법 폐지를 전제로 '특별법 제정(대체입법)'이냐 '형법보완'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있는 열린우리당은 일단 박 대표의 발언을 긍정 평가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이날 "큰 틀에서 우리 입장과 별 다를 게 없으며, 여야간에 얼마든지 대화를 통해 다룰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영춘 원내수석부대표도 "뒤늦게나마 접점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폐지 반대여론이 부담스러웠던 여당으로선 박 대표의 발언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체입법과 형법보완을 놓고 팽팽했던 당 분위기가 대체입법쪽으로 쏠리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국보법 TF팀 우윤근 의원은 "대체입법에 무게가 실리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는 박 대표가 말한 대로 '정부참칭'을 삭제하면 북한을 반국가단체가 아닌 '준(準) 적국'으로 규정할 수 있고, 법의 명칭까지 바꿀 경우 여당의 대체입법 골격과 비슷해진다는 해석을 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에 형법개정을 주장하는 의견이 여전히 강력한데다 박 대표의 발언진의를 의심하는 이도 적지 않아 상황은 아직 예측불허다. TF팀 최재천 의원은 "박 대표가 진정으로 국보법에 대한 방향 전환을 한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를 유보했다.
이 같은 기류는 "정부참칭을 없애고 명칭을 바꾸는 대신 국보법의 골간은 그대로 갖고 가는 개정쪽으로 하자"는 뜻으로 박 대표의 생각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절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TF팀 최용규 의원은 이날 "다양한 의견을 들은 뒤 가능한 한 22일까지 당론을 정해 23일 의원총회에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추석 연휴 전에 대체입법이냐, 형법보완이냐가 결판이 난다는 얘기다. 여야가 협상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느냐를 가름할 1차 고비가 되는 셈이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한나라당, "폐지만 안한다면…"
국가보안법 개폐논쟁에 있어 그간 '폐지반대·소폭개정' 방침을 유지하던 한나라당이 20일을 기점으로 '폐지반대·대폭개정'쪽으로 한걸음 옮겨놓았다.
모호한 입장을 취해오던 박근혜 대표가 국보법 2조의 참칭 조항을 삭제할 수 있고, 명칭 개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천명한 게 계기다.
박 대표가 그간 국가보안법 논란의 핵심인 참칭 조항을, "체제를 지키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삭제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의미가 커보인다. 한나라당 내에선 참칭 조항은 국보법 개정의 마지노선으로 받아들여져 온 게 사실이다. 때문에 박 대표의 천명은 국보법을 대폭 손 볼 수 있다는 의사 표명으로 읽힌다.
하지만 "명칭을 바꾸고 대폭 개정하면 대체입법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여권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은 명확한 선을 긋는다. 박 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여당이 추진하는 대체입법은 국보법의 이름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폐지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나라당 지도부의 입장은 '여당이 폐지 입장에서만 물러서주면 터놓고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다'로 요약된다. 이 같은 입장 천명은 "우리는 명칭도 바꾸고 대폭 개정하자는데, 여권은 폐지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몰아세우는 효과도 함께 노린다. "그 쪽에서 폐지주장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박 대표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그러나 김기춘 김용갑 이방호 의원 등 당내 보수파 의원들의 모임인 자유포럼은 즉각 성명서를 내고 "참칭 조항을 삭제하면 국보법은 존속할 필요조차 없다"며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박대표의 입장 표명에 우려를 표한다"고 비판했다. 국보법 개정안을 마련중인 장윤석 의원도 "법리적으로 참칭이란 부분을 삭제하고는 국보법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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