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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7>신호등 프로젝트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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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7>신호등 프로젝트 성공

입력
2004.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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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프트웨어를 얻어냈지만 우리 실정에 맞게 고쳐 나가는 건 우리 몫이었다. 그 작업은 피를 말렸다. 내 머리 속에는 ‘미션 크리티컬’(Mission Critical)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어떠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순간의 고장이나 오작동으로 사람의 목숨을 뺐을 수도 있는 민감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혹자는 남의 것을 베낀 수준 아니냐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개발하는 기술은 신의 계시나 기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비방(秘方)은 더욱 아니다. 대개는 전체 시스템의 설계 구상 아래 각 구성 요소를 경제적으로 짜 맞추는 일이다. 인공위성이 그랬고, 의료 장비인 컴퓨터 단층촬영(CT)과 유전적 조작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울시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설계한 뒤 하드웨어를 구성하고 소프트웨어를 완성해야 했다.

우리가 겪은 고초를 시시콜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형편없는 예산은 물론 장비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는 점은 말해두고 싶다.

성공의 대가는 대단했다. 정지 신호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어 절약한 기름값만 따져도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신호를 기다리는 짜증과 교통혼잡에서 오는 사고율도 크게 줄었다.

교훈도 얻었다. 단순한 기술개발이 아닌 시장이 보장된 프로젝트라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교통신호 전산화는 서울시가 시장을 제공, 그만큼 효율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아픈 경험도 있다. 1978년쯤에는 우리나라에도 CT가 도입됐다. 사람 몸 속에 숨어 있는 병을 찾아낼 수 있는 이 검사를 받으려고 병원마다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병원들은 200만 달러가 넘는 CT 장비를 앞 다퉈 사들였다.

나는 CT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친구인 서울대의대 고창순 교수를 만났다. 나는 대뜸 “영향력 있는 병원장 열 사람만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에게 CT를 팔 속셈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CT를 만들어 30만 달러에 주겠으니 먼저 투자를 하라”고 권했고, 3명이 응해 90만 달러를 확보했다.

CT를 만들려면 나도 200만 달러를 주고 먼저 사들인 다음 연구해야 했다. 1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이 더 필요했다. 나는 민간기업과 접촉했다. 당시 정부는 이 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는 금성사를 찾아가 연구 결과를 100% 넘겨주겠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CT를 사줄 병원도 확보돼 있으니 최소의 투자로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세계적인 CT 권위자인 조장희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당시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았다. 그는 한국을 방문해 CT의 시장성을 설명해달라는 나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초청 비용 등은 모두 내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금성사는 성공 가능성은 인정했지만, 투자 결정은 내리지 않은 채 미적댔다. 다음에는 삼성전자를 노크했다. 역시 허사였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 때 우리 손으로 CT를 만들어 냈다면 한국은 지금 세계 의료 기기 시장에서 선두 주자가 돼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제 교통신호기 얘기는 이쯤하고 행정 전산화에 대해 말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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