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말 잔치가 무성했다. 하지만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를 깨닫는 사람은 무척 적어 보인다. 그저 문화 ‘상품’을 많이 수출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듯한 분위기다. 과학 기술 발전의 뿌리가 될 전문용어의 표준화, 자국화가 문화 경쟁력 뿐 아니라 모든 국가 경쟁력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우리의 전문용어 현실은 국가 경쟁력을 말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전문용어는 늘 쓰는 말과 가까워야 지식 전파가 쉬운데, 우리 용어들은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와 일본식 한자어가 대부분일 뿐 아니라 학문 분과마다 서로 달라 혼란을 더한다. 그래서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지경이다. 이렇게 의사소통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니 연구와 창작의 여유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영어 전문용어는 71%가 일상 용어와 같은데, 한국의 전문용어는 35%만이 그렇다고 한다.과학기술이 우리보다 뒤떨어진 중국도 개화기에는 외래어를 많이 썼지만 국민적인 저항 덕분에 지금은 1% 남짓한 외래어만 쓴다고 한다. 전문 용어 자료밭(데이터베이스) 구축에서도 한국은 선진국과 비교가 안된다.
표준화가 덜 된 것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바꾸지 않고 외국어, 특히 영어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점점 더 짙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자국어를 토대로 고유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고, 용어 습득의 어려움 때문에 국민의 지식 수준과 국가 경쟁력도 떨어지게 된다.
국립국어연구원이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같은 곳에서 용어 제정과 표준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런 분산된 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어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가 문화관광부의 한 ‘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우리 문화의 뒤떨어짐을 웅변한다.
필자는 우리말로 전문 용어를 제정하고 유통시킬 가칭 ‘용어 제정 위원회’를 만들 것을 정부에 제안한다. 이 위원회는 지금의 유사 기구들보다 그 위상과 규모, 전문성 모두를 격상시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적어도 국무총리 산하의 독립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 21세기가 문화 전쟁의 시대라는 말이 정말 어떤 뜻인지, 이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우선해야 하는지를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용어 제정 위원회의 설치를 위해 다같이 노력하자.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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