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귀향이라고요?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임금을 못 주는 기업이 늘면서 올 추석은 '우울한 명절'이 될 것 같다. 경기가 풀린다는 소식도 없어 추석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나가도 별 희망이 없는 것이 근로자들을 더 힘들게 한다.
지난 17일 수원지방노동사무소 이후송 근로감독관과 함께 찾은 경기 화성시 북양산업단지내 M전기. 근로자 2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어두운 표정으로 공장 안에 쌓여 있는 전기코드 제품를 손질하고 있었다. 지난달초 회사가 부도 나고 근로자들은 2개월치 임금을 못 받았지만 은행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라도 받아줄까 기대하며 공장을 돌리고 있다. 근로자 이모(45)씨는 “나이가 많아 딱히 갈 곳도 없고, 배운 기술이라고는 이것 밖에 없다”며 “아이들 학원은 물론, 먹을 것도 줄이는 판에 추석 귀향은 생각도 못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월급이 아니다. 이대로 공장이 청산되면 거액의 퇴직금까지 날리게 된다. 회사 경리담당 김모(41)씨는 “중국산 저가제품이 밀려들고 은행은 오히려 대출금을 회수하며 돈 줄을 죄어 35년이나 된 중소기업이 이렇게 쓰러지는 것이 요즘 현실”이라며 “20~30년 근무한 직원들이 수두룩한데 모두 빈털터리가 될 신세”라고 푸념했다.
이 감독관이 “3개월분 임금과 3년치 퇴직금은 우선 변제 받는다”고 말했지만 근로자들은 “생계비도 안 된다”며 담배만 피워 물었다.
경기 안성시 신건지동 안성제1공단 S섬유. 지난달 말 폐업한 이 회사 직원 설모(48)씨도 3개월치 임금 750만원을 받지 못해 체임 진정을 냈다. “대학 3학년인 아들을 휴학시켜 군에 보내고 아내는 식당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설씨는 “우리 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명절이 더 힘든 것 같다”며 상담을 마친 후 막노동 일거리를 찾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 감독관은 “조사 결과, 사업주도 도산으로 전 재산을 모두 날린 상태”라며 “체불임금을 청산할 능력이 없어 퇴직금은 국가가 대신해 지급하고 자신은 사법처리를 받아야 할 형편”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체불임금 청산 기동반인 이 감독관의 책상 위에는 임금과 퇴직금 수천만원씩을 받지 못한 레미콘 공장 근로자들, 하도급 업체가 문을 닫아 노임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건설현장 노동자들, 상여금이 밀린 휴대폰 부품업체 직원 등 임금 체불 진정 서류들이 수북하다.
이 감독관은 “현재 처리하고 있는 체불임금 진정만 100건이고 1주일에 30건이 새로 쏟아진다”며 “특히 올해는 경기침체에 따른 장기 임금 체불이 많아 추석 체임 후유증이 예년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의적으로 체불하는 악덕 사업주도 있지만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라며 “마음이 푸근해야 할 추석이 오히려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른다”고 말했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8월말까지 체불임금 발생액은 6,865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발생액 5,211억원을 벌써 초과했다. 더구나 체불액 가운데 43%(2,883억원)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6만7,000여명이 평균 429만원 가량을 받지 못한 셈이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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