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북한과 중국간에 작지만 의미심장한 소동이 벌어졌다. 중국의 외교전문지 '전략과 관리'가 "북한 지도부는 가족 세습을 위해 정치박해를 대대적으로 자행하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하자, 중국 당국이 북한측 항의를 받은 뒤 부랴부랴 수거에 나선 것이 소동의 전말이다. 북한을 혈맹이 아닌 주변국 중 하나로 간주하려는 중국 내 시각이 보편화하면서 생긴 일이었다.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으로 대표되는 항일, 공산혁명 세대가 정치의 전면에서 사라진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의 중국은 이런 정서를 밑에 깔고 북한을 대할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가 몸에 밴 중국 4세대 지도부는 선배들이 북한 빨치산 세대를 '동지'로 간주하면서 북한의 든든한 후견자를 자처했던 것과는 달리 '국가 대 국가'라는 냉정한 입장에서 북한을 대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올 4월 후진타오 주석 취임 이후 첫 중국 방문에 나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이례적으로 4세대 지도부 인맥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을 일일이 면담하면서 과거의 인적 유대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펼쳤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후진타오 시대 북중관계의 키워드는 '변화'일 것이라고 말한다. 4세대 지도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중관계의 미래지향적 변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양자관계의 중심축이 과거가 아닌 미래에 놓여질 것이며, 과거 중국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비대칭적 호혜는 축소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중국 지도부는 또 북중 관계를 양자 구도로만 바라보지 않고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등과의 다자 구도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강화할 것이다. 이는 중국에게 북한이 예전과 같은 혈맹의 비중을 갖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4세대 지도부도 중국에 인접한 북한의 지정학적 특성을 감안, '안보적 유대'만은 상당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4세대 지도부들이 종종 북중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비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의 안정이 중국 경제발전에 긴요하다고 판단하는 중국 지도부로서는 6자회담의 성공적 추진 등을 통해 한반도 상황을 적절히 관리하는 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상당수 중국인들은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북한에 더 이상 호의적이지 않다"면서 "북한으로서도 이러한 중국의 현실을 인정해야 새로운 외교현실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후진타오 3대 6과제
중국 최고 권력자가 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경제의 불균형한 급성장과 대만, 대미 관계 등 주요 3대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중국 관측통들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의 쌍두(雙頭)체제에 따른 불투명성과 경직성이 해소된 만큼 대외 노선이나 국내정책이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이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용과 균형'이 후 주석의 화두가 될 것이란 얘기다.
균형 발전
경제 문제에서 후 주석은 성장에만 매달리지 않고 긴축을 통한 안정적 성장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측면에서 균형 발전이 의미있는 포인트로 부상할 것 같다. 덩샤오핑(鄧小平) 이래 경제기조는 동부 연안의 거점을 우선 발전시킨 뒤 내륙으로 부를 확산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이었다.
후 주석은 대신 지역간·계층간 균형 발전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장 전 주석 집권 기간에 연안·내륙, 도·농간, 계층간 격차가 심각해졌다. 후 주석은 간쑤(甘肅)성, 구이저우(貴州)성 등 가난한 서부 내륙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 소외 지역의 처참함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지난 달 덩샤오핑 탄생100주년 기념연설에서 "개인 풍요의 기초 수립단계, 나라 전체의 경제 발전단계를 거쳐 십 수억 인민이 '샤오캉(小康·먹고 살만한 중류)' 수준인 3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한 바 있다. 외신들은 이를 두고 후 주석이 이제 소외계층에 눈을 돌리겠다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후 주석은 특권과 특혜 속에서 부를 축적해온 상하이방을 견제하고 농촌과 내륙의 균형발전을 통해 정치 기반을 다지는 포석을 취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예측불허의 양안 문제
양안 관계의 전망은 대만에서도 엇갈린다.
낙관론의 근거는 두 가지다. 대만에 대한 강경 기조를 주도한 장 전 주석이 퇴진했고, '선명성'이 힘을 얻을 수 밖에 없는 후 주석과 장 전 주석의 갈등 구도가 해소됐다는 것. 따라서 유연한 입장이 예상된다는 기대다.
그러나 후 주석이 실제 어떤 '색깔'을 낼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더 일반적 관측이다. 추타이싼(邱太三)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 부주임은 "중국의 대만 정책이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 방향은 미 대선과 대만 입법원 선거 이후에야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선 후 주석이 대만에 강경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군부를 단기간에 휘어잡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천치마이(陳其邁) 대만 행정원 대변인은 "장 전 주석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어 후 주석이 단기간 내에 대만 정책을 주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대만 언론들은 군사위에 새로 들어온 4명이 모두 야전 사령관이라는 점에 주목, 전투성이 더 강화됐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후 주석의 과거 경력을 들어 대화를 우선시 하되 '독립 불용'의 입장은 한층 강하게 견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후 주석은 시장(西藏) 자치구 당 서기 재직 시 티베트의 독립 시위를 냉혹하게 진압한 바 있고,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간쑤와 구이저우성에서 근무해 중국의 통일을 저해하는 움직임에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용적 대미 관계
후 주석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세대도 아니고 전임자들의 족쇄였던 천안문 사건에서도 자유롭다. 미국과 관련해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큰 부담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 개발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적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미국과 사안에 따른 선택적 공조와 경쟁을 기본 노선으로 삼을 전망이다.
다만 중동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을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 동안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이란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번번이 반대를 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점령 중앙아시아 군사협력 강화 미일 동맹 강화 동남아 해상로 군사진출 등 중국 포위 전략을 꾀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에너지 안보론'과도 연결돼 있다. 후 주석은 미국의 중동 장악에 대응해 올 상반기 아프리카의 산유국을 순방하며 원유 도입 계약을 맺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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