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중국 베이징(北京) 중관춘(中關村) 전자시장. 하이얼(hair) 상표가 붙은 세탁기와 핸드폰, 콘카(KONKA), TCL이란 이름의 평면TV 등 중국 브랜드가 진열대의 전면을 장악하고 있었다. 중국제품 매장은 인파로 붐비는 반면 수입제품 코너에는 손님이 뜸했다.얼마 전만 해도 외국 전자 제품의 메카로 꼽히던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한 상가 주인은 “디자인이나 성능면에서 외국제품과 차이가 거의 없어 값싼 중국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를 따라오는 중국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기술격차가 3~4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지 진출 기업인들은 주요분야의 개발기술을 빼놓고는 이미 격차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LG필립스디스플레이 방계진 북경법인 사장은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휴대폰조차 현지에서 디자인과 성능이 똑 같은 모방 제품이 나오고 있다”며 “기술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되 중국시장에 걸 맞는 마케팅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기술경쟁력과 상품의 질, 디자인 등을 앞세운 지금까지의 중국시장 진출전략은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10여년의 중국경험을 가진 방 사장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강조한다. 중국직원을 동반자로 생각하고 좋은 합작파트너를 찾아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면서 현지실정에 맞는 마케팅을 구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LG전자는 연구개발(R&D) 분야도 조만간 국내 본사와 같은 수준으로 중국 현지 인재로 구축할 계획”이라며 “93년 중국에 진출해 중국전역에 20개 생산법인과 10개 지역본부를 갖춘 LG전자의 성공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힘입은 바 크다”고 말했다.
7년동안 상하이(上海) 이마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선민 사장은 ‘단결’을 주문했다. 그는 “상하이시에만 까르푸, 월마트 등 세계 유수의 유통업체 78개가 들어와 각축 중이고 상하이 정부는 산하 5개의 유통공사를 합병해 외국업체에 대항하고 있다”며 “이런 중국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우리나라 기업도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업과 유통업이 컨소시엄을 이뤄 중국현지에 생산기지와 유통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기업의 생산기지가 구매력이 높은 중국 강남지역보다 조선족이 많은 동북지역에 몰려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는 “힘을 모으지 않고 모래알처럼 흩어지면 중국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다운 뚝심과 치밀한 준비로 현지시장의 틈새를 노리는 것도 유효한 전략으로 제시됐다. 중국 굴삭기시장의 25%를 점유하고 있는 대우중공업의 이중욱 상하이지사장은 “중국 굴삭기시장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지의 판매망 및 애프터서비스 구축 등 다국적 기업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틈새 시장 공략이 주효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이징ㆍ상하이=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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