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이제 텃밭 말고는 농사를 안 지으신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의 밭 하나를 그냥 묵혀 두기가 죄스러워, 올 봄에도 그 밭에 밭벼를 심었다. “다른 동네사람이 봐도 그렇지, 이렇게 큰 길 가의 밭을 그냥 묵혀두면 안 된다”며 기계로 밭을 갈아준 사람은 한 집안의 아저씨였고, 늦었지만 밭벼를 심으면 좋겠다고 일러주더라고 했다.집에는 밭벼 볍씨를 따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없어 그걸 구하기 위해 여기 저기 알아보는 동안 시간이 흘러 다른 집의 밭벼보다 스무 날쯤 늦게 씨를 뿌렸다. 제대로 시기를 맞춰 볍씨를 뿌린 밭은 늦여름에 이삭이 팬다.
그러나 우리 밭의 벼는 구월이 되어서야 패기 시작했다. “저게 벼 노릇을 제대로 해서 사람 입에 들어갈 수 있을지. 더구나 사람들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있는 밭이라 여간 남세스럽지 않다. 너무 늦게 패서 낟알로 익지 못하고, 길가에 그냥 허옇게 서 있다면 그땐 또 그게 무슨 창피이겠느냐.”
내가 집에서고 음식점에서고 밥알 하나를 쉽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쌀은 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또 다른 심성이며 나아가 아버지의 얼굴인 것이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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