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년 9월20일 평화운동가 에르네스토 테오도로 모네타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1918년 졸(卒). 모네타의 공적 삶은 갈기갈기 찢긴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운동에 발을 들여놓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탈리아 지배에 맞서 일어난 1848년 밀라노 봉기에 15세 소년으로 참가한 이래, 모네타는 1859∼60년에는 주제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사르데냐 해방군으로, 1861년 통일 이탈리아왕국 수립 이후에는 이탈리아 정규군으로 젊은 시절을 군문에서 보내며 조국의 해방과 통일에 헌신했다.모네타는 1861년 제대한 뒤 밀라노의 일간지 '일 세콜로'(世紀) 편집장으로 언론계에 투신했고, 군 복무 기간 중의 참혹한 전쟁 체험을 반추하며 국제 평화운동을 벌여나갔다. 그는 1887년 '롬바르디아연맹'이라는 국제 평화단체를 만들고 이듬해에는 평화주의 잡지 '비타 인테르나치오날레'(국제 생활)를 창간해,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평화주의의 확산에 노력했다. 모네타는 1906년 자신의 주도로 밀라노에서 국제 평화대회를 열었는데, 이 공로를 인정 받아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평화에 대한 모네타의 열망이 소년 시절 이래 삶을 이끈 애국적 열정에 못 미쳤던 것은 확실하다. 만년에 이르러 그는 리비아의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이탈리아-투르크전쟁(트리폴리전쟁: 1911∼1912)을 지지했고, 그 못지않게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이었던 제1차세계대전(1914∼1918)에 이탈리아가 참전할 것을 주장해 평화주의자로서의 명성에 결정적 흠을 남겼다. 이탈리아인들에게는 리비아에 문명을 전파하고 교화할 '백인의 짐'이 주어져 있다는 식민주의자들의 궤변에 이 명망 있는 평화주의자는 기꺼이 동의했다. 한국인들에게는 재테크 포털 사이트 이름으로 익숙한 모네타는 이탈리아어로 '화폐'라는 뜻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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