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을 따 미국에서 음식점을 하는 동시에 한국에서도 현재 운영하고 있는 학원을 정리하지 않고 가능한 한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18,19일 이벤트기획사 한국전람㈜ 주최로 해외 이주ㆍ이민 박람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을 찾은 이민 희망자 1만5,000여명 가운데 4분의 3은 30,40대였다. 과거 이민 박람회장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했으나 이날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들 30,40대 이민 희망자의 특징은 ‘양다리 이민’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무작정 이민을 가서 실패하는 선배 이민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한국의 생활기반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고 조금씩 현지로 옮겨가는 것이다.
박람회장을 찾은 회사원 김모(31)씨는 “외환위기 이후 퇴출자와 퇴직자들이 재산을 모두 짊어지고 해외로 갔으나 절반 이상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곳의 직장을 유지하면서 휴직하거나 장기휴가를 자주 내 3~4년에 걸쳐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여의치 않으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3세 아이를 데리고 온 회사원 조모(33ㆍ여)씨는 우선 캐나다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먼저 영주권을 따고, 다음에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남편은 남겨둔 채 나와 아이가 이민을 가고, 이어 캐나다에서 남편 일거리를 만들어 이민을 오게 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이민 박람회장을 꾸준히 찾아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람회장에 부스를 개설한 ㈜현대이주공사 관계자는 “30,40대 이민 희망자 대부분이 당장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기보다는 장기계획 차원에서 영주권 혜택을 묻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캐나다 영주권은 6년 동안 가족 중 한 사람이 2년 이상만 거주하면 되고 준비비용도 수백만원에 불과해 인기가 높다”고 귀띔했다.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직업을 구했던 지금까지의 이민자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어울리는 중간 이상의 직업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1년 넘게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회사원 최모(31ㆍ여)씨는 “상당수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중산층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어 놀랐다”며 “부부가 모두 기술이나 어학능력을 갖춰 좋은 직업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박람회장에서 IT나 조리 등 기술분야 이민을 추진하는 업체들의 부스에 이민 희망자들의 발길이 이어진 것도 이런 차원으로 분석된다.
홍석우 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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