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이 감도는 가을이 왔다. 지난 여름 더위만큼이나 뜨겁게 안방을 달궜던 드라마가 있었다. 대다수 여성은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그 화제의 드라마를 멀리하고는 대화가 어려웠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애기야…”란 말을 따라 하고 주제곡을 흥얼거리는 것을 볼 때마다 드라마의 영향력에 놀랐다.대한민국은 아마도 드라마 없이는 하루도 견디어내지 못할 것만 같다. 한국은 ‘드라마 왕국’으로 통하고 방송사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방송사들은 ‘드라마 전쟁’이라고 하여 드라마의 시청률을 비교ㆍ분석하고 온 힘을 다 쏟는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TV 자체가 드라마만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한국의 드라마는 제 몫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삶과는 다른 삶을 보여주는 다양한 소재가 전개되고 현실이 채워줄 수 없는 위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아시아인들의 공감대를 얻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아침 드라마부터 저녁 황금 시간대의 일일 드라마, 뉴스가 끝나면 하는 시트콤, 주말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삼각관계에 빠진 연인들을 보여주고 부유층 남자와의 사랑을 성취하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래서 현실의 고단함을 너무 쉽게 잊도록 하기 때문은 아닐까. 드라마는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여자이며 그들은 남자에 의해 구원된다. 이것은 너무 달콤한 사탕이어서 여자의 이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잊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너무 강한 여자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메시지가 드라마에 은밀히 담겨 있다면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그 사랑은 진정으로 여자를 위한 달콤함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영상의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때로는 남자를 바라보며 눈물짓는 여자가 좀더 밝은 웃음을 짓고 인생에 사랑만큼 중요한 다른 일도 많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술탄 훼라 아크프나르(터키인)/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