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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118>나비에게 꽃은 절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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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118>나비에게 꽃은 절실하지 않다

입력
2004.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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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하는 길에 좋은 음악과 함께 릴케의 시를 들었습니다. 내 눈빛을 지워도 당신을 볼 수 있으며, 귀를 막아도 당신을 들을 수 있고,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나의 양팔이 꺾이어 당신을 붙들 수 없다면 나의 불붙은 심장으로 당신을 붙잡을 수 있다는 의미의 시를 들으며, 마음 깊은 곳에 감춰졌던 감성들이 살며시 살아 올라왔습니다.가을인가 봅니다. 구태여 릴케의 절절한 시가 아니어도 가을은 비가 내려 더욱 깊어질 것이고 바람의 빛깔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할 듯 7합니다.

인연이 닿아 함께 하는 연인을 두고 흔히 ‘꽃을 찾는 나비’에 비유합니다. 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만남은 나비와 꽃이 아니라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마리에 닿음을 말하지만 이를 떠나 꽃을 찾아 드는 나비를 보면, 절로 그 비유가 맞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나비, 혹은 나방이 식물과 인연을 맺는 모습을 보면, 번식상의 인연이 아닌,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인연으로 생각할 때 비슷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나비와 나방은 아주 비슷합니다. 흔히 나비는 예쁘고 나방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비보다 화려하고 고운 나방들도 얼마든지 있지요. 두 가지를 구별하려면 나비는 낮에, 나방은 밤에 주로 활동하며 대개 나비는 앉을 때 잎을 펼치지만 나방은 접고 앉는다는 것을 기억하면 됩니다. 더듬이 모양이 곤봉형, 빗살무늬형으로 각각 다르기도 합니다.

나비와 나방은 활동시기가 다른 만큼 찾아가는 식물도 다릅니다. 나방이 찾는 꽃들은 앉기 쉽게 아래를 향한 꽃들이 많은 반면, 나비가 찾는 꽃들은 위를 향한 경우가 많지요. 나비는 시각이 발달해 자신의 배우자는 물론 꽃을 찾을 때도 색깔과 모양으로 인식하지만 나방은 냄새로 아주 멀리 있는 배우자도 찾고, 꽃도 그러합니다. 특히 밤에 꽃을 찾아야 하니 나방이 찾아가는 꽃들은 밤에도 눈에 잘 뜨이는 밝은 색에 향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매력을 느끼는 상대가 자신의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고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며 조금씩 변화하고 공진화해 간다는 사실도 같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이 나비들에게 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절실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곤충에 있어서 성충들의 목적은 교미를 통한 후손의 번성에 있으므로 꽃이 주는 꿀이 또는 꽃가루는 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 것을 보충하는 정도라고 합니다. 식물의 입장에서의 나비도 수분 효율을 높이기 위한 조력자인 것이지 필수요건은 아니지요. 때론 이 조력자가 어떤 꽃가루를 날아오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기도 하지만요.

사람들에게 이성이란, 때로 삶을 바꾸고 목숨처럼 절실한 기쁨과 슬픔을 주지만, 이 세상에는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 수많은 존재와 가치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혹 이 눈부신 가을에 혼자이거나 혼자가 되었다고 너무 쓸쓸해 하지 마십시오. 때론 곁에 있는 그 어떤 한 사람보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자유롭게, 그리고 열심히 사랑할 수 있다면, 그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듯합니다. 가을이니까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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