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액면변경)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물가불안을 촉발시키는 것은 아닌가, 돈이 부동산이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닌가, 너무 큰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닌가. 정부·학계 일각의 반대와 일반인들의 불안감에도 불구, 리디노미네이션 연구를 끝낸 한국은행과 시행찬성론자들은 부작용보다 실익이 크다는 입장이다.
●쟁점 1 인플레 우려
1,000원을 1원으로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이 단행된다면 1,800원짜리 라면 한 그릇 값이 1.8원으로 바뀐다. 이 때 라면가게에선 정직하게 1.8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2원으로 올릴 공산이 높아, 전체 소비자물가가 인상된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헌재 부총리 역시 "물가문제가 걱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할 경우 미국의 센트처럼 '원' 아래 '전'단위가 새로 생기기 때문에, 이런 식의 물가상승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전' 단위 동전이 사용되는 만큼, 제조업체나 상인들이 가격 우수리를 반올림하는 식의 얄팍한 행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유로화 도입 당시 유럽국가들은 자국화폐와 유로화간 교환비율이 소수점이하로 복잡했기 때문에 일부 가격의 우수리를 반올림하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우리나라는 100대1이나 1,000대1의 단순한 비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쟁점 2 재산도피
구권을 신권으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재산노출 우려로 인해 현금자산가들이 돈을 부동산에 묻어두거나 해외로 빼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60년대 화폐개혁을 경험했던 고령자산가들은 이 부분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은 일정기간, 일정한도까지만 신권교환을 허용했던 과거 화폐개혁과는 다르다. 한은 관계자는 "누가 얼마를 바꾸든 신원은 묻지 않는 만큼 걱정할 이유는 없다"며 "시중은행 창구를 통한 교환기간은 1년 정도 제한되겠지만 그 기간이 지나더라도 한은 창구에선 언제든 교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쟁점 3 과도한 비용
리디노미네이션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발권비용 뿐 아니라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각종 자동판매기, 금융기관 회계프로그램, 하다 못해 음식점 금전등록기나 문방구에서 파는 장부까지 고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관계당국 분석에 따르면 새로운 화폐를 찍어내는데 2,500억원, ATM 및 자동판매기의 화폐인식센서교체에 5,000억원 등 전체 비용은 2조6,000억원대로 추산됐다. 과연 경제가 어렵고 급한 현안이 산적한 지금 상황에서 굳이 급하지도 않은 리디노미네이션에 이런 돈을 쏟아 부을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은 리디노미네이션으로 5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매년 10만원권 자기앞수표 발행관리비용으로 6,000억원이 들어가는 점을 감안할 때 리디노미네이션 시행후 5년이면 3조원이상의 경비절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은측은 "준비기간만 3년이상 걸리는 만큼 그 사이에 ATM이나 컴퓨터프로그램은 어차피 교체수요가 생긴다"며 "위조지폐 방지 등 사회적 효과까지 감안하면 비용 이상의 실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2원·20원짜리 화폐 나올까
리디노미네이션이 단행돼 새로운 화폐가 발행될 경우, 2원 혹은 20원 같은 2단위 지폐나 동전이 나올지 여부가 주목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각 국의 화폐액면체계는 1-5-1-5 배열과 1-2-5 배열 등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 1원-5원-10원-50원-100원-500원-1,000원-5,000원-1만원의 액면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1-5-1-5 배열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화폐의 보편적 체계는 1-2-5 배열이다. 미국의 경우 1달러-2달러-5달러-10달러-20달러 식으로 되어 있고, 유로화 역시 1유로-2유로-5유로-10유로-20유로-50유로-100유로 체계로 짜여져 있다. 미국의 쿼터(25센트)처럼 일부 2.5단위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선진국들은 1-2-5 배열의 화폐액면을 갖고 있다. 세계 주요국가 가운데 1-5-1-5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따라서 1,000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이 시행된다면, 차제에 우리나라도 아예 2원(지금의 2,000원)이나 20원(현 2만원)권을 새로 찍자는 의견이 있다. 화폐 2장의 수요를 1장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거래가 편리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은은 2단위 화폐발행에 대해 소극적이다. 한은 당국자는 "화폐 액면체계는 상거래관행이나 사회통념에 기초한 것이지 어떤 정답이 있을 수 없다"며 "1-5 배열을 1-2-5배열로 바꾸는 문제는 좀 더 검토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1-2-5배열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도 20달러짜리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주종지폐로 널리 통용되고 있지만, 거의 거래되지 않고 있다. 일본도 몇 년전 2,000엔권을 발행했으나 일반인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아 고육지책으로 공공부문 급여를 이 화폐로 지급했을 정도여서 우리나라 역시 2단위 화폐가 등장하더라도 보편적 거래수단으로 착근할지는 미지수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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