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9월18일 미국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런던에서 약물 중독으로 죽었다. 28세였다. 지미 헨드릭스는 록그룹 '도어스'의 리드싱어 짐 모리슨, 여성 블루스 가수 재니스 조플린과 함께 '세 J'로 불렸던 대중음악가다. 1960년대 청년들의 우상이었던 이 세 미국인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시기에 죽었다. 사인이 약물 중독이라는 것도 똑같다. 텍사스 출신으로 헨드릭스보다 한 살 아래였던 조플린은 헨드릭스가 죽은 지 석 달 만인 1970년 10월4일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죽었다. 플로리다 출신으로 역시 헨드릭스보다 한 살 아래였던 모리슨은 헨드릭스가 죽고 열 달 뒤인 1971년 7월3일 파리의 제 집 욕실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지미 헨드릭스는 워싱턴주 시애틀 출신이다. 대중음악계의 슈퍼스타로 군림한 것은 죽기 전 네 해에 불과하지만, 그는 이 짧은 기간에 다양하고 창조적인 기법을 통해 전기기타의 어휘목록을 크게 불려놓았다. 1970년대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에게 헨드릭스가 끼친 영향은 결정적이다. 헨드릭스는 또 청중 앞에서의 쇼맨십도 대단해, 기타를 등 뒤로 연주하는가 하면 손가락 대신 이(齒牙)를 사용해 연주하기도 했고, 연주 도중 기타를 불에 태우기도 했다.
헨드릭스가 스타덤에 오른 것은 영국 록그룹 '애니멀스'의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의 눈에 띄면서였다. '애니멀스'가 해체의 길을 걷고 있던 1966년 뉴욕의 한 클럽에서 이 재능있는 기타리스트를 발견한 챈들러는 매니저로 나서기로 결심하고 헨드릭스를 런던으로 오도록 설득해, 드럼의 미치 미첼, 베이스의 노엘 레딩과 함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를 결성토록 했다. 헨드릭스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룹의 해체, 재결합, 재해체로 이어진 그 뒤 어수선한 네 해 동안 지미 헨드릭스라는 이름은 그대로 한 세대의 이름이 되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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