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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선비의 배반/박성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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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선비의 배반/박성순 지음

입력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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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배반/박성순 지음조그윈 발행/1만1,800원

‘지금 왜적이 물러난 것은 중흥의 기회이다. 그러나 조정은 동서남북으로 서로 헐뜯고 공격하니 국가와 사직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킨 명장 곽재우가 1600년(선조 33년) 2월 좌병사를 사직하며 올린 글의 한 대목이다. 곽재우가 헐뜯고 싸우기를 일삼는다고 지목한 사람은 조선후기 붕당의 선비들이다.

당시의 당파싸움이 조선의 국운이 기우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선비는 늘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고, 덕망높은 군자로 기억된다. 과연 그럴까?

소장 역사학자인 박성순(35) 단국대 겸임교수는 ‘선비의 배반’에서 조선의 선비상은 일방적인 과거 미화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조광조(1482~1519) 이후 조선 중ㆍ후기의 사림(지방을 근거지로 한 중소지주 출신의 지식인)들은 중앙권력이 향촌으로 뻗는 것을 막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 ‘또 하나의 권력’일 뿐이다.대의를 앞세우고, 정의 앞에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선비상과는 멀어도 한참 먼 모습이다. 하물며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과는 상관도 없다.

이런 선비의 권력욕을 저자는 사서오경의 하나로 마음을 다스리는 글귀를 모은 ‘심경(心經)’을 키워드로 해서 설명한다. 신하, 특히 사림들이 도덕을 명분으로 내세워 왕을 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로 삼은 것이 바로 ‘심경’이라는 얘기다. 당초 임금 앞에서 경서를 강론하는 조선의 경연(經筵) 자리에 ‘심경’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계속된 상소 끝에 자신의 도덕적 결함을 사림파와 결탁해 무마하려 했던 효종 때부터 경연에 나오게 됐다. 이후 심경 강독의 부침은 사림파의 축출, 등용과 꼭 맞물려 돌아간다.

저자는 심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공허한 명분 싸움 등 조선의 성리학이 “선비들의 심신을 수양하는 학문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왕권을 억압하는 한편 아래로는 민에 대해 일방으로 군림하는 사대부 독존의 사회체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무기”였다고 규정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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