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열린 금융연구원 주최 학술대회에서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특히,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주제 발표를 맡은 첫번째 회의는 현 정책에 대한 이 위원장의 옹호와 학자들의 비판이 엇갈리면서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이 위원장은 '참여정부의 비전과 정책과제'라는 발표문을 통해 일곱 가지 참여정부 비판 여론을 소개하고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위원장은 먼저, 일본식 장기불황 또는 남미식 경제침체 우려에 대해 "우리는 90년대초의 일본과 달리 부동산 폭락 현상이 없고 3% 이상의 금리 등 대응책이 충분히 있다"며 "특히, 우리를 동아시아 개발모델의 대척점인 남미에 비유하는 것은 대단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가설에 불과한 제조업 공동화 우려는 시기상조이며 외국자본의 국내 투자도 적지 않다"며 "유가상승세 둔화와 경기의 완만한 회복세 등을 고려할 때 스태그플레이션도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경쟁력은 조사기관마다 지표가 달라 하락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막연히 좌편향, 반시장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불안을 부추기는 행태를 보면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국가혁신과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 교육혁신과 인재양성 특권철폐와 부패추방 시장개혁 정부혁신 등 7개 개혁과제를 새롭게 제시하고 "참여정부는 구름에 싸인 달이며 언젠가 구름이 걷히면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정부 출범 1년7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비전 제시만 난무하고 있다"며 "지금은 어떻게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찾느냐가 비전이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금리 인하로 부동산의 매력을 높여놓고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발상도 문제가 있다"며 "왜 국내 기업인들이 해외 기관의 국가경쟁력 설문조사에서 부정적인 답변을 많이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적인 방향은 공감한다"고 밝힌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와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도 세부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김 교수는 "내세울 만한 시장개혁 실적이나 개방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새로운 개혁과제들도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구조조정의 과도기에는 불안정성이 높아져 고통분담이 절실한데 국민이나 정부 모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제는 고도성장에 집착하기 보다 중성장에 대비한 적응 방안과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할 때"라며 "참여정부가 개혁이 잘 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은 "시장이 잘못 됐을 때 이를 제대로 위에 알리지 못하는 관료주의가 행정부내에 여전히 남아 있다"며 "이래서야 개혁입법이 제대로 의회에 전달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은 LG카드 사태 해법에 대해 관치가 더욱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지적하고 "경쟁사들에게 다른 경쟁사 지원을 요구한 것은 군사독재 시절은 물론,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해 이 위원장으로부터 "과정이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부실카드사 정리 실패는 정부 최대 실책"/정운찬 서울대 총장 "콜금리 인하 성급"
정운찬(사진) 서울대 총장은 부실 카드사를 정리하지 못한 것은 참여정부 금융정책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또 8월의 콜금리 인하조치는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금융연구원 학술대회에서 금융정책분야 주제발표를 통해 "신용카드사들의 건전성악화는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된 일로 참여정부의 잘못이 아니었다"며 "그러나 2003년3월 카드위기가 표면화했을 때 경제원리에 따라 부실카드사를 정리하지 않고 적자생존원리를 부정함으로써 결국 참여정부는 큰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카드사들의 자산담보부 증권(ABS)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조기상환 요구를 가로막은 것도 정부의 편법적 금융정책의 일례라고 꼬집었다.
정 총장은 수년간의 통화팽창정책이 주택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급등 같은 역기능을 초래했음을 지적하면서, 8월의 콜금리 인하 역시 물가상승 국면에서 단행됐다는 점에서 성급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의 민영화와 관련, 재벌이 결코 외국자본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정 총장은 "마지막 남은 은행마저 외국자본에 넘기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벌에 넘길 수는 없다"며 "인수자가 마땅치 않다면 민영화 일정을 연기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총장은 금융감독체제 개편과 관련, 공무원 조직확대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금융감독체계 정비의 핵심은 금융감독에 관한 공무원조직의 간섭을 배제하고 게임룰에 의한 감독관행을 정착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개편논의는 오히려 금감위 사무국조직과 기능을 확장하는데 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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