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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여론'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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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여론'은 어디에 있나

입력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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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참 오묘하다. 마음을 잘 가다듬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정을 얻을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도 마음의 지옥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은 괴물이다. “고개만 돌리면 기슭이 바로 저기인데…”하는 구절은 그런 마음의 오묘함을 말해준다. 자신이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고개만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기슭이 바로 저기에 있다는 뜻이다.마음만 오묘한 것이 아니다. 의견도 오묘하다. 어떤 사안에 대한 사람의 의견도 마음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의견은 이성적 사고의 산물이라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의견에는 심리적 감정의 상태가 많이 반영된다. 내 의견 속에 내 생각이 몇 퍼센트나 들어있는가? 나의 의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속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서 오는 영향도 있고,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둔 부분도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에 기초한 부분도 많다. 신문인지 방송인지, 신문이라면 어떤 신문을 보았는지에 따라서 내 의견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했다. 10㎝ 정도의 선을 기준선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5㎝, 10㎝, 15㎝의 선 세 개를 같이 보여주면서 기준선과 같은 길이의 선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정답은 당연히 두번째 10㎝의 선이다. 너무나 명명백백한 답이다. 그런데 그 실험의 세팅이 재미있다. 사람 열 명을 모아놓고 차례로 그 질문을 했다. 열 명 중에서 아홉 명은 심리학자의 조교였다. 아홉 명은 심리학자의 사전지시에 따라 첫 번째 5㎝ 선을 정답으로 꼽았다. 그런 때 당신이 열번째로 대답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다른 아홉 사람의 의견처럼 5㎝ 선을 꼽을 것인가? 아니면 9 대1의 현저한 차이에 개의치 않고 10㎝ 선을 택할 것인가?

실험 결과는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른 아홉 명의 의견을 따랐다는 것이다. ‘다수의 독재’라는 현상이다. 여론 형성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의 한 예다. 이렇게 명백하게 답이 있는 질문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애매모호하고 정답이 명확하지 않은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는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실험은 일회성으로, 한번 보고 나면 다시 볼 일이 없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낯선 사람들 속에서조차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본성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 직장에서, 더구나 생존이냐 탈락이냐를 판가름 짓는 삶의 터전에서는 더하다.

사람의 의견은 다른 여러 상황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개인의 의견이 모인 ‘여론’에 대해서도 평가가 분분하다. 개인의 의견을 산술적으로 합한 것이 여론이 되는가? 여론조사 결과는 반드시 여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터넷을 도배하는 ‘대세’라는 것을 여론으로 볼 수 있는가? 공적으로 표현된 개인의 의견이모여야 여론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의견의 종합을 여론으로 보는 이론가도 있다.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때, 소수 의견은 자꾸 움츠러든다.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은 실제보다 더 큰 것처럼 보이고, 소수 의견은 침묵 속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과거사 청산 문제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론이 편을 갈라 대치 상태를 보이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여론몰이도 한다. 여론이 나뉜 상태에서 각자의 주장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과연 누구의 의견이며 누구를 위한 여론인가를 물어보게 된다. 내 자신의 마음과 의견, 그리고 여론의 정체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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