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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집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를 낸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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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집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를 낸 조성기

입력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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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성기씨가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현대문학 펴냄)라는 제목으로 작품집을 냈다. 14편 가운데 13편이 작가의 기억 속 실재 이야기들이다. 화자인 ‘나’는 물론이고, 가족과 동료작가 등 작품 속 이야기에 얽혀 든 이들의 이름도, 가려야 할 사연이 없는 한 실명(實名)이다. ‘허구’나 ‘창작’의 사소한 기미조차 감지하기 힘들다(‘그 섬에 가기 싫다’만 예외).그래도 책 표지에는 ‘소설’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 까닭을 물었다. “기억 자체에 이미 창작적 요소가 포함된 것 아니겠어요?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기억의 왜곡’이 되겠고…” 그는 기억을 되살리는 동안 기억의 재해석이 이뤄지고, 미처 못 보던 기억의 지층이 드러나 저절로 글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게 창작의 느낌과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책의 작품들은 원고지 50매 분량의 그런 ‘소설’들이다.

첫 작품 ‘고향 점묘’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내 어머니 이름은 이시자(李時子)이다. 시간에 공자의 자(子)를 붙인… 어머니는 나의 시간을 창조해준 또 하나의 ‘시간님’이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공간이다.” 그의 유년의 고향 기억은 어른들이 심어준기억이다. 한국전쟁이 나기 석 달 전에 태어난 작가에게 미군의 폭격이며초가지붕이 푸르르 타오르는 불의 기억이 있을 리 없지만, 그는 천연덕스럽게 그 기억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그의 성에 대한 천착은 전작들에서처럼, 이번 작품집에도 뚜렷이 관류한다.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에서는 “중학시절 3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의 소녀”를 그리워하고 ‘잠자리에 대한 명상’에서는 교미하는 잠자리에서 연상된 어린 날의 공상적 에로티시즘을 풀어놓는다. 늦저녁 외조모 집에 모인 동네 과부들의 음충스런 이야기들과 부산 황령산 공동묘지에서 훔쳐본 미군과 양색시의 벌거벗은 모습들이 교미하는 잠자리의 형상에 오버랩 되고, 뒷날 영화제목 ‘무릎과 무릎사이’에서 ‘무덤과무덤사이’를 떠올리기도 한다.

다만 그의 사랑은 스탕달이 ‘결정작용’(crystallization)이라고 말한 것처럼 대상을 관념 속에서 미화하고, ‘이데아’ 같은 대상으로부터 소외되기 일쑤인 결핍의 사랑이다. 그는 이같은 ‘정신적ㆍ영적 갈증’이 그 특유의 종교적, 철학적 세계관으로 나아가게 한 뿌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수도 꿈을 꾸었는가’에서는 종교와 성의 문제를, ‘우리는 아일랜드로 간다’에서는 그의 혐연(嫌煙)의 연원과 그것이 인성에 미친 영향 등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지난 날의 광적인 반공주의나 일등 콤플렉스에 대한 반감 등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 문단에서는 선구적으로 ‘성정치’ 혹은 ‘성과 정치’의 테마를 요리해 온 작가로서의 지향을 내보이기도 한다.

‘그와 싸라기 했다’에서는 “소설이라는 감옥을 벗어나면 글이라는 초원이 펼쳐진다”고 했다가 “마침표 없는 글을 쓰고 싶다”며 뜬금없이 마침표 없는 문장들로 젊은시절의 좌절된 사랑 이야기를 풀어낸다. 80년대 ‘한 문장이 채 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단편에서 60매 분량의 소설한 편을 한 문장으로 이어놓고는 끝내 마침표를 찍지 않고 매듭짓기도 한 그다. “기억 역시 문장으로 분절되지 않은 한 덩어리로 있잖아요.”

지난 세기 초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자신의 작품과 그의 삶을 두루마리 풀어내듯 통째 소설화한 바 있다. 그가 세월의 풍화, 그 물리적 시간의 파괴력에 맞선 도구 역시 ‘기억’이었다. 프루스트가 그 ‘왜곡된 기억’에 기대 무려 13권의 대작을 썼듯이 조성기씨도 언제까지, 어디까지 나아가 존재의 궤적을 통한 인간 본질을 캐려고들지 모른다고 했다. 그에게 ‘공간’은 프루스트의 ‘시간’과 다르지 않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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