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이라크전은 불법”이라고 발언한 지 하루 만에 미국 등 전쟁에 참여한 동맹국들이 일제히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나섰다.미국은 정부 내 관련 고위인사를 잇따라 내세워 아난 총장을 하루종일 성토했다. 존 댄포스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16일 “내가 그의 조언자였다면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하고 충고했을 것”이라고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스콧 맥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유엔 결의 1441호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그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연합군에 부여했다”고 논평했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도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은 적절한 법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고 가세했다.
미네소타에서 선거유세를 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아난 총장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으나, 유엔총회 결의와 후세인이 위협이라는 안보리 만장일치의 결정을 상기시키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유엔이 갖고 있는 정보와 우리가 보아온 정보는 똑 같은 것”이라며 “유엔결의는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호주 폴란드 불가리아 등 동맹국 정부들도 즉각 아난 총장을 비난했다. 일부는 한발 더 나가 아난 총장의 발언이 유엔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규탄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유엔은 마비된 조직”이라며 “그것은 국제적 위기상황에 어떤 것도 다룰 능력이 없다”고 폄하했다. 일본 정부는 직접적인 비난은 삼갔으나 아난 총장이 자신의 발언의 정확한 진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파장이 의외로 확대되자 아난 총장은 한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프레드 에크하드 대변인은 “그의 발언은 일년 이상 취해왔던 입장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며 “이는 국제사회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에크하드 대변인은 또 아난 총장이 처음에는 ‘불법’이란 말을 사용하기를 매우 꺼려했으나 BBC기자가 이를 유도하는 질문을 거듭해마지못해 나온 것이라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아난 총장이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처음으로 ‘불법’이라는 강도 높은 단어를 꺼낸 것은 지금의 수렁에 빠진 이라크에서 유엔이 발을 빼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프랑스 파리 전략연구재단(FSR)의 프랑수아 에이스부르 소장은 “유엔은 이라크 현 상황이 계속되면 내년 1월 예정된 총선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유엔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명분으로 전쟁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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