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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본성과 양육/매트 리들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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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본성과 양육/매트 리들리 지음

입력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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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과 양육매트 리들리 지음ㆍ김한영 옮김

김영사 발행/1만7,900원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가, 양육으로 형성되는것인가는 분명 과학계의 논쟁이다. 이론의 사회적인 파급효과가 이만큼 큰 과학논쟁도 없을 것이다. 어떤 이론이 설득력이 있느냐에 따라 좁게는 가정의 양육방식이 바뀔 것이고 사회의 교육체계, 복지정책이 달라질 것이다. 더 넓게 보면 본성이론이나 습득이론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사회체제가 달라질 수도 있고, 사람들의 세계관이 바뀔 수도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유명한 지리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유전적 천재성’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거기서 유명한 판사, 정치가, 귀족, 군 지휘자, 과학자, 시인, 음악가, 화가, 성직자, 노 젓는 사람, 격투사들의 계보를 조사해 “천재성이 유전”이라는 사실을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이 주장이 나오고 3년 뒤 스위스 식물학자 알퐁스 드 캉돌은 골턴이 유전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양육과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했다며 이전 두 세기동안 위대한 과학자들을 배출한 곳은 종교적 관용, 광범위한 교역망, 온화한 기후, 민주적 정부를 가진 나라나 도시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박하려고 골턴이 다시 쓴 책의 부제는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이었다. 그의 말대로 “본성과 양육은 편리한 어구다. 성격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정확히 양분해주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100년 넘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지배적인 메커니즘이 본성인가, 아니면 양육이나 학습인가는 대단한 논쟁거리였다.

걸출한 과학자들이 모두 이 대결의 양쪽 진영에 포진해 있다.인간본성의 보편성을 입증했다고 한 찰스 다윈(1809~1882)을 비롯해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1822~1911),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얻어 사람의 마음도 신체기관들처럼 생물학적 적응을 통해 진화한다고 주장한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1842~1910) 등은 “본성이 인간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한 대표적인 과학자들이다.

그 맞은 편에는 인간의 마음은 오로지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험론 진영의 권위자들이 서 있다. 조건반사이론으로 유명한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파블로프(1849~1936), 그 이론을 더욱 발달시켜 행동주의 심리학을 만들어낸 미국의 존 왓슨(1878~1958), 그 계보를 이어 ‘티칭머신’으로 유명해진 스키너(1904~1990). 어린시절의 ‘경험’이 사람의 마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나 문화인류학을 개척한 독일의 프란츠 보아스(1858~1942), 사회학의 창시자 에밀 뒤르 켐(1858~1917) 역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나 사회적 현상은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보았다.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매트 리들리는 올해 출간한 ‘본성과 양육’에서 100년 넘는 이런 논쟁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준다. 하지만 갈등의 양 진영에 대한 소개는 물론, 양쪽을 지지하는 숱한 연구나 둘을 화해하려 했던 참신한 시도들을 특유의 해박하고 활달한 필치로 보여주는 것만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리들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본성이나 양육 어느 하나로 규정짓는 이분법에 마침표를 찍고, 책의 원제처럼 ‘양육을 통한 본성(Nature via Nuture)’이라는 새로운 이론틀을 제시했다.

본성과 양육 논쟁의 중립지대에서 신중하게 숱한 연구들을 검토한 그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본성이 양육을 위해 설계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살아 있는 동안 활동하고, 서로를 스위치처럼 켜고 끄며, 환경에 반응한다.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신체와 뇌의 구조를 지시하지만, 환경과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을 거의 동시에 해체하거나 재구성한다. 유전자는 행동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는 거의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말로 유전자 결정론자들을 비판한다. 양육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양육을 편드는 지지자들은 어리석게도 유전자의 힘과 불가피성에 치여 유전자가 그들 편이란 가르침을 놓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체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게놈은 신체를 건설하는 청사진이 아니라 신체를 익혀내는 요리법’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한편으로 본성 대 양육 논쟁이 결과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어떤 이론으로부터 이상적인 사회의 설계도를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비판했다.“인간본성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즉시 그 설명을 명령으로 전환해 완벽한 사회의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며 “그 행위는 양육의 힘을 믿는 사람이나, 본성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모두 공통적”이라고 설명할 때 저자는 나치즘이나 공산주의를 비롯한 역사 속의 여러 전체주의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행동유전학, 학습이론, 정신분열증이나 근친상간 등 정신병의 원인 등 여러 주제를 입체적이고 문학적인 분위기마저 물씬 배어나는 솜씨로 검토해낸 좋은 대중과학서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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