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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사건뒤에 숨은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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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사건뒤에 숨은 얘기들

입력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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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고바야시 유타카 글ㆍ그림. 김지연옮김. 미래M&B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ㆍ그림. 신형건옮김. 보물창고

세상에는 매일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난다. 끔찍하고 참혹한 현장이 뉴스로 보도될 때 그것은 사건에 머무르지만, 연관된 사람들의 삶과 주변의 변화가 세월에 녹아 엮어지면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은 아프가니스탄의 파구만 마을이 배경이다. 첫 장을 펼치면 벚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등 과수나무에 꽃이 분분한 봄날의 평화로운 풍경이 보인다. 여름이 와서 풍성하게 과일이 열리자 야모는 시장으로 팔러 간다. 전에는 아빠와 형이 하던 그 일이 올해는 야모의 몫이다. 형은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갔기 때문이다.

처음 가본 시장은 빵 굽는 냄새, 양탄자 냄새, 책 냄새로 가득하고 손님 부르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아빠가 자두를 파는 동안 야모는 당나귀가 끄는대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버찌를 판다. 장사도 잘 끝내고 시장에서 새로운 풍물도 구경하고 맛있는 점심도 먹는다. 아빠는 과일 판 돈으로 하얀 새끼양 한 마리를 샀다. 야모는 양에게 ‘바할’이라고 이름 붙인다. ‘바할’은 봄이라는 뜻. 다음 해 봄에 형만 돌아오면 야모는 완벽하게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무 그림도 없다. 사막의 누런 빛깔에 “그 해겨울, 마을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란 글밖에. 나무의 초록색과 붉은 열매의 풍요로움, 이른 아침 태양과 석양에 붉디붉게 물든 사막의 신비한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는 텅 빈 마지막 장은 늘 거기에 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의 충격을 한층 더 강하게 한다.

또 한 권의 그림책 ‘쌍둥이 빌딩을 걸어간 남자’ 역시 마지막 장에서 그 빌딩이 없어져 버린 풍경을 보여주어 효과를 높인다. 1974년 어느 여름날 아침, 한 남자가 높이가 400m나 되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사이를 쇠줄로 잇고 그 위에서 한 시간 동안 걷고 뛰고 춤추고, 무릎을 사뿐 굽혀 인사도 했다. 줄타기를 사랑했던 거리의 곡예사, 필립 쁘띠는 법을 어기면서 자기의 소원을 이루었고 판사의 명령을 따라 공원에서 아이들에게 줄타기 묘기를 보여주었다.

이제 ‘쌍둥이 빌딩’은 9ㆍ11테러로 사라졌지만 사람들에게는 폭파되던 모습뿐 아니라, 필립 쁘띠가 빌딩 사이로 걸어가던 일도 기억에 남아 오래오래 생생한 이야기로 전해질 것이다.

한때 떠들썩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다가 사라져버리는 사건이나 우리민족의 과거에도 숱한 이야기의 소재가 숨어있을 것이다. 한꺼풀 벗겨낸 진상이나 사람들의 다양한 기억을 이야기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사건은 금방 세월에 묻히지만 문학작품의 생명은 길다.

강은슬/도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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