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17일 민족문학작가회의(작가회의)가 창립됐다. 작가회의는 표현의 자유 쟁취를 포함한 한국사회 민주화를 기치로 내걸고 1974년 11월18일 창립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의 후신이다. 한국문인협회(문협)를 비롯한 기존 문인단체가 유신 파쇼 체제의 나팔수가 돼있던 시절 소수 문인들의 양식과 용기에 힘입어 태어난 자실은 전두환 독재 시절인 1984년 12월19일 제2회 민족문학의 밤 개최와 더불어 재창립됐고, 6월항쟁의 자장(磁場) 속에서 민족민주운동이 고양되던 17년 전 오늘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이름으로 확대 개편되었다.감옥 속의 시인 김지하에게 연대를 표명한 '문학인 101인 선언' 발표와 함께 출발한 자실은 이 선언으로 고은 박태순 윤흥길 이문구 이시영 송기원 등이 연행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의 작가회의까지 이어지는 30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회원들을 경찰서 유치장으로, 구치소로, 교도소로 보냈다. '노예수첩' 사건의 양성우, 남민전 사건의 김남주와 임헌영, '민중교육'지 사건의 윤재철과 김진경 등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구속 문인이었을 뿐이다. 문익환, 송기숙, 김병걸, 박용수, 황석영, 김종철, 이광웅, 김정환, 김사인, 백무산, 박노해, 김명인, 백진기를 포함한 다수의 회원들이 때로는 어마어마한 조직 사건에 연루돼, 때로는 단지 소박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길고 짧은 옥살이를 해야 했다.
작가가 어떤 문학단체에 소속돼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오늘날 작가회의는 한국 문학 그 자체라 해도 좋을 만큼 대다수의 역량 있는 작가들을 회원으로 안고 있다. 예총 산하의 다른 장르 단체들이 아직도 제 나름의 주류적 기득권을 향유하며 민예총 산하의 장르 단체들과 경쟁하고 있는 것과 달리, 문협만은 유독 작가회의의 구심력에 무너져내리며 겨우 허울만을 유지하고 있다. 기이하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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