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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형석과 극장가기-'감사용' 등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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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형석과 극장가기-'감사용' 등 3편

입력
200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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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극장가의 최고 명절인 추석 시즌은 올해 꽤나 풍성하다. 먼저 한국영화로는 ‘슈퍼스타 감사용’과 ‘귀신이 산다’가 있다.‘슈퍼스타 감사용’의 미덕은 은근하면서도 진한 감동.프로야구 원년의 꼴찌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패전 처리 투수였던 감사용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화려한 비주얼이나 자극적 컨셉은 없지만 일상적이며 보편적인 드라마로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상황은 박철순의 연승 기록 수립 경기. 모든 관객이 박철순의 승리를 원할 때 감사용은 마운드에 올라간다. 그때까지 단 한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던 그에게 ‘1승’은, 어쩌면 박철순보다 훨씬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감사용’은 스포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순간이 아닌 패배의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정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깊은 속내가 드러난다. 볼장 다 본 경기를 쓸쓸히 마무리하러 등판하는 무명의 야구선수를 이 영화는 패배자라고 부르지 않고 오히려 ‘슈퍼스타’라고 치켜세운다. 승자와 패자를 너무 빨리 나눠 버리고 오직 승리만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들의 숨가쁜 삶에 ‘감사용’은 딴지 거는 셈이다.

그리고 묻는다. 감사용 그는 인생에서도 과연 패배자였을까? 감사용 역의 이범수를 비롯, 장항선 김수미 윤진서 류승수 조희봉 이혁재 등, 최근 한국영화 중에 캐스팅의 앙상블이 가장 뛰어난 영화다.

‘귀신이 산다’는 집에 대한 한국인들의 한 많은 사연을 호러와 코미디라는 장르 속에서 유쾌하게 풀어낸다.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여기저기 셋방살이를 하며 살아온 주인공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드디어 ‘당당한 나의 집’을 마련한다. 그런데, 그 집에 귀신이 산다! 할리우드의 하우스 호러가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의 하우스 호러 ‘귀신이 산다’는 다소 귀여운 비주얼로 꾸며지는데, 차승원이 소파와 레슬링을 하고 손발이 바뀌거나 수백 마리의 닭들이 와이어 액션(?)을 펼치는 장면은 정말 기발하다. 여기서 ‘귀신이 산다’는 귀신의 슬픈 과거가 밝혀짐과 동시에 ‘사랑과 영혼’을 연상시키는 최루 멜로로 서서히 변해가는데, 빙의된 장항선의 놀라운 개인기는 포복절도 그 자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 감독 자신이 어린 시절 받았던 가톨릭 교육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권위에 굴복할 것과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배우며 자랐던 과거에 대한 고통스러운 복기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성장영화에서 벗어나, 현재에도 지속되는 과거의 흔적을 미스터리 구조 안에서 엮어낸다. 영화감독인 엔리케에게 옛 친구인 이나시오가 불쑥 찾아와 ‘방문객’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건네며, 그리고 자신을 ‘앙겔’(천사)라고 불러달라며 시작하는 ‘나쁜 교육’은 알모도바르 특유의 정념으로 빚어낸 보석같은 영화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영화 속 영화와 영화 속 현실은 날줄과 씨줄을 이루는 가운데, 감독은 한 순간도 감정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숨막히는 드라마를 창조한다. 그 위를 흐르는 ‘문 리버’를 부르는 소년의 미성. 도저히 잊을 수 없는장면이다.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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