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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 모인 韓-中학자 고구려사 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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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 모인 韓-中학자 고구려사 격론

입력
200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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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를 오늘날 어느 국가가 계승하고 있는가는 오직 지금의 국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영토 안에서 이미 다른 나라에 속해 계승되는 토지나 국민, 문화를 자기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주권침범 행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16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 ‘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을 주제로 고구려연구재단이 개최한 제1회 국제학술회의에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200여명의 방청객이 참석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고구려 학자가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논리를 내세우자, 국내학자들이 조목조목 비판하는 등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역사계승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인식론에서부터 세부 사료해석까지 서로 다른 견해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중국의 쑨진지(孫進己ㆍ73) 선양(瀋陽)동아연구중심 주임은 첫 발표자로 나서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이 주로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는 온전히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최근 일부 중국학자들의 논리와 달리 그는 고구려사는 중국을 비롯해 남북한이 함께 계승했다는 ‘일사양용’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된 계승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1,000여년 전 고구려의 역사적 귀속을 이용하여 오늘날 현실적으로 형성된 국경을 바꾸려는 근거로 삼는 기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구려사 갈등이 영토분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

토론자로 나선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실장은 우선 쑨 주임의 ‘현재 영토중심주의 사고’에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 실장은 “역사의 계승이란 역사적 맥락을 누가 계승했느냐는 역사의식의 문제”라며 “과거 역사의 계승권과 현재의 영토 주권과는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여러 역사서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의미하는 등장하는 ‘삼한’을 고구려가 제외된 것이라고 정반대로 보는 쑨 주임의 해석은 기본적인 사서 해석에서 오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쑨 주임은 “지금 프랑스 땅인 갈리아, 브리튼을 로마가 지배했다고 이탈리아 역사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민족의 계승문제를 논의하는것이 아니라, 국가를 거론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토지 점유와 계승권에 기초하는 것이 세계사와 국제법에 통용되는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고구려사가 중국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한국에 계승됐다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쑨 주임의 딸인 쑨홍(孫泓ㆍ34) 선양동아연구중심 연구원도 ‘고구려와 동북아시아의 여러나라와 민족간의 관계’라는 발표에서 “고구려는 중국에 예속해 있으면서 다른 민족을 통치하는 형태”였다고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토론자로 나선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모든 대외관계를 신속의 유무에 두는 것은 조공책봉외교가 동아시아 전통의 외교 양식이라는 연구 성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 이라며 “유리한 사료만 재단해 일방으로 해석하는 것은 연구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쑨 연구원의 자의적인 연구방법을 문제 삼았다.

한편 존 던컨(UCLA), 방학봉(옌볜대) 교수, 오 바트사이한 몽골 과학아카데미 연구원 등 학술회의에 참석한 해외 학자들은 역사 정체성이나 사료 등을 볼 때 고구려사는 분명히 한국사라고 밝혔다.

발표가 끝난 뒤 김정배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중국학자들의 ‘일사양용’ 논리는 역사 연구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비학문”이라며 “역사는 일관성 있는 계승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 국민이나 학계에서 과거 고구려 영토를 내놓으라고 주장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한중 학자들의 인식 차이가 크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며 “앞으로 이런 학문 논의를 계속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中, 몽골 역사도 왜곡"

고구려연구재단 제1회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몽골 과학아카데미 오 바트사이한(42) 연구원은 16일 “중국학자들의 몽골사 왜곡은 역사가 길다”며“1990년대 들어 중국서 발간된 여러 몽골 관련 역사서의 왜곡에 대해 몽골 정부가 공식으로 항의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일부 학자들의 연구일 뿐,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다는 답변만 내놓았다”고 말했다.

몽골사를 전공한 오 바트사이한 연구원은 17일 학술회의에서 ‘중국 역사학자들의 몽골사 왜곡에 대하여’를 발표한다. 독자적인 문화와 생업을 가졌던 흉노를 중국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로 분류하는 등 중국학자들의 몽골사 왜곡 실태를 밝히는 내용이다.

그는 발표문에서 1986년 중국 공산당 내몽골자치구 위원회 지도에 따라 출간된 ‘몽골족간사(簡史)’에 ‘몽골족은 조국 대가정 가운데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근면하고 용감한 민족이다.

그들은 장기간에 걸쳐 우리 나라 북방의 광활한 초원에서 살아왔다’며 독립적인 몽골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규정했다고 비판했다. 또 1990년대에 출간된 ‘몽골족통사’에서는 1911년 몽골 독립과정을 ‘제정 러시아 제국주의자들의 장기간에 걸친 선전과 지휘 하에 일어난 연극’으로 규정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매국노로 매도했다고 소개했다.

오 바트사이한 연구원은 “칭기즈칸은 ‘아침마다 내가 일어나면 남쪽에 중국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달라’고 말할 정도로 중국을 주적으로 생각했다”는 말로 칭기즈칸을 중국사람으로 보는 최근 중국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중국의 역사왜곡은 대국, 대민족의 침략정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몽골과 한국이 민간이나 정부차원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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