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반도체 악재’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 법무부는 16일 D램 가격 담합 혐의로 조사를 받아온 독일의 반도체업체 인피니온이 담합 사실을 인정하고 벌금 1억6,000만 달러를 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아온 국내 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백기 든 인피니온
미 법무부는 삼성전자, 인피니온, 하이닉스, 마이크론(미국) 등이 1999년 7월부터 2002년 6월까지 담합을 통해 D램 가격을 끌어올려 미 PC 업체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2002년 6월 조사를 시작했다. 2001년 상반기 공급초과로 급락하던 D램 가격이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28메가 기준으로 갑자기 4배 이상 치솟은 사실에 주목한 것.
미 법무부는 조사 과정에서 인피니온이 경쟁업체와 D램 가격을 의논하고 매출 정보를 주고 받는 등의 구체적인 담합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인피니온은 조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벌금을 줄이는 일종의 ‘사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인피니온은 이미 7월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미 법무부 조사에 대비, 2억1,200만 유로의 대손충당금(벌금을 낼 것에 대비해 미리 준비하는 돈)을 쌓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반도체업체의 반응은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자료를 제공하는 등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며 “조사 진행사항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도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 도미노가 더 큰 문제
미 법무부가 인피니온이 다른 업체에 대한 조사에 협력키로 했다고 공표하자 국내 업체들은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만약 혐의가 인정될 경우 국내 업체는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을 내야 한다. 2002년 당시 미국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2.1%로 가장 높았고 마이크론(18.0%), 인피니온(12.9%), 하이닉스(12.7%) 순이었다.
미국의 반독점 위반 벌금 사상 3번째로 큰 액수인 인피니온의 1억6,000만 달러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삼성전자는 3억 달러 대, 하이닉스는 인피니온과 비슷한 액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올 상반기에만 6조2,700억원의 순이익을 낸 삼성전자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지 몰라도 이제 막 재기의 발판을 다진 하이닉스에게는 치명적인 악재다. 벌금 납부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송의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에서도 담합 의혹을 조사할 가능성이 있고 미 PC업체들이 잇따라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천호 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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