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은 영국인들에게 17세기 이래로 400여년간 내려온 전통 2개가 깨진 날이었다. 왕실과 귀족의 전통적 스포츠인 여우사냥이 금지법안의 하원 통과로 퇴출 일보 직전에 놓이게 됐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찰스 1세 이래 처음으로 하원에 난입했다.영국 하원은 이날 사냥개를 이용한 여우사냥을 2006년 가을부터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7년을 끌어 온 이 법안은 그 동안 상원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아왔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상원에서 또 부결되면 1911년 의회법(Parliament Act)에 따라 강행할 것”이라고 못박았기 때문. 의회법에 따르면 상원은 하원의 재정관련 개정법안을 부결ㆍ수정할 권한이 없고 기타 법률에 대해선 1년간의 정지권 밖에 없다.
사냥개를 이용한 여우사냥은 17세기부터 귀족 스포츠로 정착됐으며 왕실의 크리스마스 다음날 정례 행사이기도 하다.
그 동안 동물보호단체가 “귀족의 유희를 위한 동물학대”라고 비난했고 노동당이 폐지 운동을 주도해 왔다. 노동당은 정부 기관 명칭에서 ‘왕립(royal)’‘여왕 폐하의(her majesty)’등을 빼고 있으며, 왕실이 대신에게 사슴고기를 하사하는 900년 된 전통도 이미 없앤 바 있다.
그러나 왕실과 여우사냥이 생업인 농촌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한 금지 반대 여론도 거세다. 찰스 왕세자는 2002년 정부가 여우사냥을 금지하면 이민을 떠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이날 하원 건물 밖에서 2만 명이 시위를 벌였고, 5명은 하원에 난입해 투표가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의원들은 “청교도 혁명으로 1649년 처형당한 찰스 1세 때 이후 처음으로 하원 난입 사건이 벌어졌다”며 경찰과 의회 경비대를 비난했다. 13일에는 배트맨 복장의 남자가 왕궁 발코니에서 시위를 하는 등 주요 시설 경비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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