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들, 게 섰거라. 너희들 거기 안 서니! 너 이놈, 복로 아니냐?”걸음아 날 살려라 냅다 달리다 냇가로 풍덩 뛰어들면서 추격전은 끝이 났다. 더 이상의 추격은 의미가 없었다. 수박서리의 주동자는 바로 수박밭 주인 아들로 밝혀졌으니까 말이다.우리가 간 곳은 친구네 수박밭이었다. 대전 유천동 수침교, 일명 열두 공굴 다리 옆 야산에 지금 생각하면 꽤나 큰 수박밭이었다. 평상시 수심이 1m 정도의 냇가다. 초등학교 시절 뜨거운 햇살 아래 하교시간에 같은 반 아이들 4명이 모인 것이다. 당시는 수박서리니 복숭아서리니 해서 주인에게 들켜도 경찰서 가고 손해배상하고 하는 일은 없던 시절이었다.
“오늘 한 번만 하자. 앞으론 안 할 게, 야! 복로야.” “어제도 어떤 놈들이 수박 4통 따갔다고 하셨어.” 친구의 입은 부어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만 하자.” 수박 서리 모의를 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 바로 수박밭 주인 아들 복로였다. 녀석은 친구들의 압력에 할 수 없이 앞장을 섰던 것이다. 며칠 전에도 3통을 서리해서 수영하며 시원하게 먹었다.
손가락을 걸고 우리는 작전을 시작했다. 우선 책가방과 웃옷을 벗어 한 군데 모아놓고 돌멩이로 덮는다. 냇가를 건너 막 수박밭에 들어가려고 낮은 포복을 하는 순간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어떻게 뛰었는지도 모르게 달아나다 보니 복로만 보이지 않았다.
냇가 건너에 아버지 앞에 고개 숙인 채 서 있는 친구가 흐릿하게 보였다.이튿날 우리는 복로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수업시간 내내 이리저리 눈치만 살폈다. 저녁때 복로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너희들 다 데리고 오래.”섬칫했다. “아버지가 수박 준다고 그 날 왔던 애들 다 데리고 오라고 했어.”며칠 후 우리는 복로네 수박밭 원두막으로 갔다. “수박 먹고 싶으면 언제고 와. 이 녀석들아! 설 익은 생수박 몰래 따먹지 말고. 알았지?” “네!” 우리들의 대답은 합창으로 터져 나왔다. 50여 년 전 추억의 시간이었다.
복로야! 우리들 23명 네 얘기 하면서 그리워하고 있다. 소식을 알 수가 없구나. 보고 싶다. 우리는 서대전초등학교 7회 6학년 4반 졸업생들이다. 소식 기다린다.
/sjk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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