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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섬·산간오지까지 투기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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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섬·산간오지까지 투기 광풍

입력
2004.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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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해안과 남해안 섬에서 확산되고 있는 땅 투기 열풍의 이면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쏟아내는 골프장 및 관광레저단지 개발 프로젝트가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신행정수도 건설에 이어 골프장 허가와 복합 관광레저개발 계획을 남발, 전국 오지의 땅값을 일제히 올려놓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금리 속에 시중에 풀린 부동자금이 토지시장으로 몰리고, 수도권 아파트와 신행정수도 예정지를 이탈한 부동산 큰손들이 규제가 없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다 보니 웬만한 관광개발 재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땅값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투기는 섬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이 살지 않아 투자가치가 확실하지 않은 무인도와 강원·경북 북부 내륙의 산간오지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선유도 무녀도 신시도 등으로 이뤄진 군산 앞바다 고군산군도는 새만금 간척지와 연계한 군산국제해양관광단지 개발이 구체화되면서 투기꾼들이 싹쓸이했다. 신시도 주민 박병근(46)씨는 "관광단지 사업계획이 발표된 뒤 고군산군도 섬들의 땅 값이 급등해 이젠 거래도 거의 없다"며 "돈이 급한 농어민 가운데 상당수가 외지 투기꾼의 공략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평당 50만∼60만원 하던 땅값은 이제 1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임야 등 개발 여지가 없는 땅도 수만원에 이르고 있으나 매물이 없어 못살 정도다. 선유도 선유2리 이장 고용운(57)씨는 "투기꾼들이 장난을 쳐 땅값만 부풀려 놓았다"며 "조만간 토지거래 허가지역으로 묶일 것이라는 소문에 섬 인심이 술렁이고 있다"고 푸념했다.

군산시 조사에 따르면 선유도의 40%, 무녀도의 48%, 신시도와 야미도의 31%는 이미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다. 군산 K부동산 최충진(46) 대표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이 일대에 해양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나오면서 외지 자금이 몰려드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무인도 개발 및 여행 사업을 하는 M사의 이종택 대표는 "매입할 만한 무인도 땅을 찾는 투자 문의가 8월 이후에만 80여건이나 쏟아져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올 초까지만 해도 섬 여행 안내요청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무인도 매입 알선과 투자정보 문의로 도배돼있다. 이 대표는 "1990년대 초반 묻지마 투자로 무인도를 샀던 사람들이 가격을 부풀려 외지인들에게 떠넘기는 사례도 있다"며 "자기 땅을 가지려는 잠재적인 욕구에다 관광 개발 기대감까지 가세해 거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일산에 사는 직장인 박정남(38)씨는 최근 '울진관광개발사무소'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로부터 땅 투자 제의를 받았다. "경북 울진군 왕피천 인근 근남면 수곡리 산간 오지 임야 8,400평이 온천단지로 개발된다"며 "사두면 3∼4배 차익은 남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한 박씨는 다음날 현지로 갔다. 그러나 환경단체 반발로 온천개발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고 행정절차에 대한 소송까지 진행 중인 땅이었다. 박씨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 성업 중인 기획부동산업자들이 경북 일대 산간오지를 관광 개발 예정지라고 과대 포장해 쪼개 파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과 강원 동해안을 연결하는 서울―양양 제2영동고속도로(동서고속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된 이후 강원 홍천 땅값도 들썩이고 있다. 홍천군 관계자는 "고원관광특구 지정과 골프장 4곳 건설 등 개발사업 기대심리로 내면과 남면, 서면 지역 땅값이 지난해에 비해 30%나 올랐다"고 말했다. 특히 골프장 예정지 진입도로변 땅값 상승이 두드러진다. 홍천 K부동산 이주현(50) 대표는 "서해안 섬이나 신도시 예정지보다는 못하지만 레저·휴양도시 구상이 구체화되면서 개발 가능한 강원 지역 땅을 중심으로 투자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밖에 강원 철원군에서는 파주시 및 연천군 일대가 신도시 개발 분위기에 휩싸이면서 땅값이 계속 올라가고 있고, 골프장 개발 붐이 일고 있는 고성과 동계올림픽 유치 예정지인 평창 일대에도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다.

국토연구원 국토환경실 윤양수 선임연구위원은 "풍부한 유동성과 대체투자처 부재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규제가 덜한 토지로 시중 자금이 몰려 오지 땅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레저단지 구상은 흡인력 있는 몇 개의 대규모 시설만 추진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곳에서 우후죽순처럼 계획을 남발해 투기 등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해남=박경우기자 gwpark@hk.co.kr 군산=최수학기자 shchoi@hk.co.kr 홍천=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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