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도 폭발 사건은 여전히 적지 않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지만 북한 측은 영국 외무부 차관에게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발파작업이었다고 해명했고 서방 외교관의 현장 접근까지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켰던 이번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만약 핵 실험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지금 국제사회에는 북한이 10월경 핵 실험을 감행할지 모른다는 소위 ‘10월 위기설’(October Surprise)이 퍼져 있다. 과거 20년의 북 핵 협상 기록은 벼랑끝 외교로 점철되어 왔다. 북한은 협상의 중대한 고비마다 필요 이상의 모험을 감행하여 협상의 돌파구로 삼거나 협상력을 제고하는 데 활용하여 왔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빚어진 위기상황에서 자신이 요구한 북ㆍ미 고위급회담 3일을 앞두고 일본을 향해 노동미사일을 실험 발사하였다. 그리고 94년 5월 북미 고위급 회담이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가운데 원자로에서 연료봉을 일방적으로 꺼내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모험을 감행하였다. 이것이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98년 대포동미사일 발사도 미국의 페리 프로세스에 따른 담판을 앞둔 시점이었다. 더욱이 2002년 6월 조지 W 부시 정부 출범 이후 첫 북미 고위급 회담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놀랍게도 북한은 서해상의 우리 해군 함정에 포격을 가하였다. 일반적으로 참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북한은 중대한 담판을 앞두고 대부분의 경우 모험적 행동을 취하여 입지를 강화하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끌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북한의 협상 행태를 고려할 때 11월 미 대선 이후 전개될 최종담판을 앞두고 핵 실험과 같은 모험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핵 실험을 통해 미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특히 핵 실험은 부시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판단에서 핵 실험을 한다면, 심각한 계산착오이다.
최근 북한은 부시 대통령을 맹비난하면서 6자 회담에 부정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케리가 부시보다 낫다고 본다면 이는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은 케리 후보가 내건 북미 양자 협상으로 인해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9ㆍ11 테러를 겪은 미국으로서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는 초당적인 최우선 외교과제로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온도차가 있을 수 없다. 외교ㆍ안보 분야의 민주당 정강정책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케리가 부시보다 낫다고 보아야 할 근거가 없다.
더욱이 민주당 정부는 일반적으로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경향이 있다. 케리 후보가 당선될 경우 국무장관 0순위라는 리처드 홀부르크씨는 약관 30대에 동아태차관보로서 가차 없는 압력을 통해 한국의 유신체제 붕괴와 민주화에 공헌한 바 있다. 그는 또한 보스니아 내전을 종식시킨 협상을 성사시켰으며 특히 독재자 밀로셰비치를 감옥으로 보낸 인물이기도 하다. 독재자 사냥꾼으로 정평이 나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미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간에 내년 상반기까지도 문제의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은 6자 회담에 연연하기보다는 유엔 안보리로 갈것이며 북한에 대한 다차원적 압력행사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핵 실험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북한을 두둔해 줄 수 없게 된다. 한국도, 중국도 더 이상 북한을 이해하는 입장에 서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협상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조치가 뒤따를 것이다. 북한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온 겨레의 염원을 생각한다면, 미 대선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6자 회담에 나와 조속히 용단을 내려야 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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