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뒷산에서 제왕 노릇하던 너구리들이 민통선 지역으로 쫓겨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청와대 경호실은 너구리 7 마리를 잡아 경기 파주시 적성면의 민통선 일대에 방사하고 대신 청와대에 토끼 수십 마리를 풀어 놓았다.언제부턴가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에서 서식해온 너구리는 '로얄 너구리'란 별명으로 불렸다. 대통령 거처와 왕궁에서 사는 데다, 아무도 해치지 않아 실제로 왕 처럼 생식해왔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너구리는 사람을 봐도 달아나지 않고 뻔히 쳐다보기도 했다"며 "일부 경호원들은 빵 조각 등을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너구리들은 청와대 본관 앞까지 거침 없이 돌아다니는 특권을 누렸다. 하지만 청와대 내에는 야생 식량이 별로 없기 때문에 너구리들은 식당 쓰레기를 뒤지거나 관저 앞에서 조류 먹이를 가로채기도 했다.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6월 초 청와대를 찾은 전남 소록분교 학생들에게 '너구리 가족' 얘기를 들려줘 박수를 받았다. 권 여사는 "꿩, 비둘기, 까치들이 먹으라고 관저 앞에 콩을 뿌려 놓으면 너구리 가족이 내려와 먹는다"면서 "너구리를 마주쳤는데 금붕어를 잡아 먹었는지 통통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측은 7월 10 마리의 너구리를 생포해 동물협회에 넘겼다. 검사 결과 너구리들은 영양 실조, 피부 질환, 기생충 감염 등의 증세를 보였다. 동물협회측은 "너구리를 치료한 뒤 일곱 마리를 살기 좋은 지역에 방사했고 세 마리는 치료 과정에서 병사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생태계를 무시한 결정을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이 너구리들이 남산에까지 발을 뻗칠 수 있도록 생태 다리를 놓아주자는 주장이 나오던 터였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서식 환경이 열악할 뿐 아니라 너구리가 광견병 등 병원균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동물협회의 자문을 듣고 청와대 관람객들을 위해 서식지를 옮겼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측은 "관람객들을 위해 굴토끼 12마리를 구입, 8월 청와대에 방사해 현재 40여 마리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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