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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온달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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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온달산성

입력
200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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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고구려 얘기로 들썩인다. 고구려를 주제로 한 전시회에서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유례없는 ‘고구려 다시읽기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국민의 심기를 건드린 탓일 게다. 고구려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국가다. 강대국의 기세에 눌려 기세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우리 민족에게 고구려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 셈이다. 이제 그 관심을 역사의 현장으로 넓힌다.북녘땅이나 만주벌판에만 존재할 것 같은 그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충북 단양이다. 남한강이 흐르는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일대는 4세기 말에서 6세기 중반까지 170여년에 걸쳐 고구려와 신라와의 영토전쟁이 있었다.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삼국을 통일한다는 속설 때문이었으리라. 목숨을 건 그들의 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끝을 맺었지만 지금도 이 곳에는고구려인의 유적과 그들에 대한 전설이 오롯이 배어있다.

온달산성(사적 264호)은 그 역사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이다.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이자 평강공주의 남편인 온달장군이 축성했고,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온달장군이 숨진 곳은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성이라는 설도 만만치 않아 역사적 진위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고구려의 성곽인 것만은 분명하다.

산성이 자리잡은 성산은 해발 427m에 불과한 나지막한 산이다. 입구에서 성까지의 거리도 700m 남짓. 반면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길을 30분 가량 어렵게 오르면 산성과 맞닥뜨린다. 화강석으로 겹겹이 둘러싼 산성은 언뜻 봐도 단단함을 느껴진다. 내벽과 외벽을 같이 쌓아 올린 흔적이 보인다. 둘레 682m로 북방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전형적인 고구려식 축성기법이다.

적군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성곽 밖으로 돌출된 외성의 일종인 치성(雉城)을 쌓은 것도 고구려만의 축성기법. 훼손된 치성의 복원작업이 최근 마무리돼 완벽한 성의 모습을 갖췄다.

성을 따라 정상 부근에 오르면 반달형 석성의 윤곽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성 위에 서면 발 아래로 남한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뒷편으로 소백산 연봉이 펼쳐진다.산기슭에 한가로운 전원마을이 보인다. 최가동, 최고로(最) 아름다운(佳)마을(洞)이라는 뜻이다. 배수진을 치고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을 병사들에게 산아래 마을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 오르는, 저녁 밥짓는 풍경이야말로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성내에는 한때 우물까지 발견될 정도로 규모가 큰 마을이 있었다. 이제 사람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만 물봉선화, 달맞이꽃, 달개비 등 야생화들이 앞다퉈 핀다. 성 둘레를 감싸고 있는 등수국, 화려한 색깔의 나비들이 합쳐지면 제법 괜찮은 야생식물원이 만들어진다.

잠시 주위 경관에 푹 빠져 고구려의 기개와 영화를 되짚다보면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눈앞에 보이는 죽령을 탈환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않겠다던 온달장군이 이 곳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숨졌지만 그의 명성은 더욱 커져갔고, 그에 대한 전설도 확대 재생산되면서 도인의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그와 관련된 많은 전설이 빛을 잃지 않고 성 주변 곳곳에 남아있다. 성산 아래 나있는 온달동굴속에는 온달이 수련을 닦았다고 전해지는 자그마한 굴이 남아있다. 온달이 성을 짓기 위해 돌을 나르다 쉬었다는 휴석동(休石洞)이라는 곳도 있다. 이 곳에는 그가 병사들과 함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눌러 만들었다는 윷판바위를 지금도 볼 수 있다. 산성에서 한달음에 휴석동까지 뛰어오느라 생겼다고 전해지는 발자국도 있었으나 주변 도로공사과정에서 훼손됐다. 인근 충주 미륵사지에는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기돌이 발견된다.

병사들이 진을 치던 장군목과 대진목, 무기를 고치고 다듬던 쇠골, 병사들의 싸움으로 피가 그칠 줄 몰랐다는 피바위골 등 전쟁과 관련된 지명만 50곳을 넘는다.

단양군 단성면 적성산성(사적 265호)은 지리한 전쟁이 신라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고구려 세력이 쇠락한 현장이다. 고구려군을 몰아낸 신라가 6세기 중반에 축조한 이 산성은 이후 고구려공격의 전초기지로 이용됐다.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고구려인을 회유하기 위한 신라 진흥왕의 적성비(국보 198호)가 세워져 있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절경도 압권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은 현의 현장을 조용히 지켜봤지만, 여전히 말이 없다. 강 주위를 붉게 달군 태양도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 그들 앞에서 역사왜곡은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단양 여행

#가는 길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영동고속도로 만종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북단양IC에서 나온 뒤 5번 국도와 합류, 성진대교에서 59번 국도를 따라 영월 방면으로 가는 도중에 온달관광지 매표소를 만난다.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 입장권 하나로 온달산성, 온달동굴과 함께 온달장군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된 전시실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적성산성은 중앙고속도로 단양하휴게소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휴게소에 차를 세운 뒤 걸어서 10분이면 산성까지 도착할 수 있다.

기차편은 서울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이 단양까지 하루 9차례 운행한다. 경북 안동에서 단양까지 가는 상행선 열차편도 하루 8차례 다닌다. 단양역 (043)422-7788.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매일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단양행 시외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먹거리

단양은 전국에서도 질 좋은 육쪽마늘을 생산하는 곳이다. 마늘을 재료로 한 웰빙음식점이 많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이름난 곳은 군청 앞에 위치한 장다리식당.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다.

군에서 주최하는 향토음식 경진대회에서 수차례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맛있다. 단양마늘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반찬으로 제공되며, 마늘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마늘솥밥은 최고의 별미. 1인분 1만원. 오곡밥으로 지어내는 산채비빔쌈밥도 인기 메뉴이다. 1인분 6,000원. (043)423-6660.

가곡면 사평리의 포장마차(422-8065)는 남한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재료로 끓여내는 매운탕이 일품이다. 동자개매운탕 4인분 3만원, 매기매운탕 4인분 2만5,000원.

축협에서 직영하는 소백산목장식당(422-9270)은 소백산 자락 해발 850m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관광목장식당. 35만평의 초지에서 신선한 약초를 먹고 자란 한우의 맛이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숙박시설

남한강자락을 굽어보는 단양대명콘도는 856개의 객실을 보유한 단양지역 최대 규모의 숙박시설이다. (043)420-8311. 단양관광호텔(423-7070), 소백산유스호스텔(421-5555), 단양유스호스텔(422-6000) 등이 규모가 큰 시설. 삼봉장여관(422-3004), 청운장여관(422-3069), 금강산파크(422-2823), 산호장여관(422-2619) 등 장급여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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