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계의 진보적 입장을 대변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여당에게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개신교계의 진보적 입장을 대변해온 KNCC측의 예기치 않은 충고를 접한 열린우리당에선 당혹감이 배어 나왔다.KNCC의 백도웅 총무목사는 14일 이부영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20년 전부터 국보법은 민족화해에 걸림돌이 되므로 폐지돼야 한다는 게 KNCC의 입장이었다"면서도 "이것이 바른 길이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근거 없는 불안감에 대해 정치인들이 성급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백 총무는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를 하루 이틀 만에 얻은 것도 아니고 이 의장도 일생과 청춘을 다 바쳐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며 "국민정서를 무시하고 단시일에 하려는 것은 각계 지도자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백 총무는 또 "얼마 전 속초에 갔다가 김일성 별장을 수리하는 사람에게 주민들이 '왜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수리하지 않느냐'고 묻더라"며 "국민들이 매사 그런 식으로 보고 있다"고 국보법 폐지에 대한 국민정서를 전했다.
그는 이어 "요즘은 남남간, 남북간, 계층간, 종교간 갈등이 예민한 만큼 국민을 위한다면 이성적으로 사고하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데 감정들이 서려있는 듯하다"며 "감정을 버리고 서로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정치권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의장은 "국보법을 폐지해도 안보에 불안감이 없도록 형법을 보완하든, 대체입법을 하든 간에 보완입법을 할 것"이라며 지지와 협조를 요청했다. 이 의장은 이어 고(故) 문익환 목사의 활동으로 화제를 돌린 뒤 "방북하고 돌아오는 길에 '국보법으로 민족화해의 길, 통일을 위한 열망을 막을 수 없다'며 감옥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신 문 목사의 뜻이 이미 이뤄졌다고 보고 서로가 이해하는 가운데 결실을 보겠다"고 말했다.
백 총무가 떠난 뒤 한 당직자는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장 스님과는 달리 KNCC 만큼은 지지를 표명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반면 폐지론자인 정봉주 의원은 "밀어붙이는 식으로 비쳐지거나 폐지에 반대하는 국민감정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자성'론을 펴기도 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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