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북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 인질 참사를 기회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는 대대적 정치 개편안을 들고 나왔다.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현 체제로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며 불가피한 조치임을 강조했으나, 대 테러전을 명분으로 1993년의 민주화헌법에 따른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선 자치공화국 등 89개 지방행정주체 행정수반의 주민직선제를 폐지하자고 제안했다. 대신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 중 지방의회가 선택하는 방안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임명하겠다는 얘기다.
푸틴 대통령은 또 국가두마(하원) 선거제도를 ‘지역구(225명)+비례대표(225명)’에서 정당명부제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자를 낸 정당 4개 중 친 크렘린 정당이 3개이고, 공산당을 뺀 야권이 완전 몰락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여권 독주의 제도화가 예상되는 제안이다. 정당명부제 하에서는 소수 민족을 대변해 온 무소속 후보의 원내진출도 원천 봉쇄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밖에 1998년 폐지된 지역ㆍ민족 정책 부처의 부활, 테러와의 전쟁을 담당할 단일기구 구성 등 중앙정부 구조도 변화시킬 방침이다.
개편안은 이미 도입된 것이나 다름없다. 친 크렘린 정당이 개헌선을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의회 통과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루 알카노프 체첸 공화국 대통령 등 지방 지도자들도 이미 적극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정치권에선 ‘더 강한 러시아’를 위한 불가결한 조치라는 찬성도 많다.
그러나 야권과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베슬란 인질 참사를 권력 강화에 이용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야당인 야블로코당의 세르게이 미트로힌 대표는 “마지막 남은 견제와 균형 수단마저 없애겠다는 반 헌법적 구상”이라고 비난했다. 무소속인 미하일 자도로노프 두마 의원은 “테러에 대항해 러시아를 단결시키는 게 아니라 정치권과 지방 정부의 권한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라며 “정치를 더 통제하려는 시도로 옛 소련으로의 복귀”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국 언론들도 “푸틴 대통령의 권력 공고화를 의미한다”“푸틴 대통령이 권력강화 계획을 수행할 구실을 찾은 것”이라는 등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일반 대중의 평가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데 에코 모스크비 라디오방송의 긴급 여론조사 결과 75% 이상이 지방 행정수반의 직선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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