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그는 도통 운전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나는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 핑계로 자동차 열쇠를 아내에게 넘겼다. 또 그는 눈이 안 좋은데도 집안에서는 절대 안경을 쓰지 않는다. 외출 한번 하자면 안경을 찾아 이방 저방, 부엌, 화장실까지 뒤진다. 안경은 대개 책상 서랍에서 나오거나,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아내의 화장대 위에서 나온다.부부가 함께 외출하는 날은 절차가 더욱 복잡하다. 그가 이방 저방 안경을 찾듯 그의 아내 역시 자동차 열쇠를 찾으랴, 현관 열쇠를 찾으랴 이 서랍 저 서랍을 뒤진다.
그렇게 온갖‘우여곡절’끝에 외출준비를 끝냈다고 해서 바로 나가느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집 밖으로 나온 다음 아내가 꼭 이렇게 묻는다. “여보, 내가 가스렌지 위에 뭐 얹어놓은 거 아니죠?”
이럴 때“아닐 거야”하고 그 말을 무시하고 그냥 나가면 그날의 외출은 하루종일 불안하다. 가스불 어련히 잘 잠갔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다시 들어가서 확인해야 서로가 편하다.
외출준비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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