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유럽의 양심’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을 주도한 동유럽의 대표적인 민주운동가로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다.하벨은 1936년 프라하의 부유한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공산체제 아래서 오히려 출신 성분이 문제가 돼 인문계 고등교육을 금지 당했다.
그는 공장근로자로 일하며 야간학교와 체코기술대학 경제학부를 다니며 ‘부유함이 오히려 단점이 되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이러한 환경 탓에 하벨은 문학도의 꿈을 간직했고, 결국 학교를 중도 포기하고 연극무대에 뛰어들었다.
무대보조원과 조감독 등을 거치며 ‘가든 파티(63년)’, 65년 ‘비망록(65년)’ 등의 창작 희곡을 발표, “공산주의 체제의 비인간화를 통렬히 비판하는 작가”라는 평을 얻었다. 68년부터 체코의 반체제운동을 발아시킨‘작가동맹’을 이끌며 이른바 ‘프라하의 봄’에 참여했다.
하벨은 소련의 군사 개입을 비난하다 저술활동을 금지 당하기도 했으나 익명이나 가명등으로 공산체제를 비판하는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반체제 작가 하벨이 민주화 지도자로 거듭난 것은 독립작가 서클인 ‘7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77년 1월 인권의 중요성을 선언한 이른바 ‘77헌장’을 발표하면서부터. 이후 하벨은 79년 ‘부당하게 억압 받는 자들을 변호하는 모임’(VONS)을 설립했다는 이유 등으로 5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89년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된 ‘벨벳혁명’의 물결 가운데 하벨은 시민포럼을 결성해 공산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리더 역할을 했다. 그 해 12월 체코 연방의회로부터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세 차례 대통령직을 맡았던 하벨은 지난해 사임 후에도 세계의 인권문제를 이슈화 하고 각종 자선활동에 전념해 왔다. 올해 6월에는 워싱턴포스트에 ‘북한에 대해 행동할때’라는 글을 기고,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역대 서울평화상 수상자는 제1회(1990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 제2회(92년)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 제3회(96년) 국경없는 의사회(MSF), 제4회(98년)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 제5회(2000년) 오가타 사다코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제6회(2002년) 국제구호단체 옥스팜(Oxfam) 이다.
김혁 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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