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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피해여성 재활 지원 '다시함께센터' 조진경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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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피해여성 재활 지원 '다시함께센터' 조진경 소장

입력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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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성매매 처벌법이요? 솔직히 큰 기대 안 해요. 화투판이 카드판으로 바뀐 것 뿐이잖아요. 하지만 칼자루를 쥔 쪽이 우리라 긴장되긴 해요.”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재활을 돕는 ‘다시함께센터’의 조진경 소장은 23일부터 시행될 ‘성매매 알선 등 처벌법’에 대해 “중요한 건 법이 아니라 사람”이라며 “아무리 좋은 칼도 누가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 연필을 깎을 수도, 거대한 바위를 깰 수도 있다”고 말한다.

최근 개소 1년을 맞은 이 센터엔 15명의 상담원이 24시간 교대로 상주하며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인권을 지키고 있다.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운영되는 이곳은 성매매 여성들이 업소를 탈출하도록 도와주고 재활을 위한 법률ㆍ의료 지원단도 가동하고 있다. 센터는 지난 1년간 6,018건의 상담을 했다.

“1주년 행사 준비하다 그만 왈칵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고, 아무것도 없는 하얀 도화지 위에 무언가를 그려내는 작업이잖아요. 재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도 없이 말이에요.” 조 소장이 내놓은 그림은 성매매 피해여성 7명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한마디로 통쾌하죠. 아무도 생각 못했던 길이잖아요. 더구나 이 소송은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이구요.”

센터가 또 집요하게 파고 든 문제는 선불금. 선불금이란 성매매 피해여성이 업소에 들어가면서 미리 받는 돈으로 일종의 빚이다. 처음 몇 백만원이던 선불금은 결근비, 지각비 등 업주의 횡포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엔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결국 피해여성은 선불금의 덫에 걸려 영영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새 성매매법에 따르면 선불금은 물론 결근비, 지각비 등을 모두 무효채권으로 간주, 피해여성들이 사기죄로 묶여 억울하게 업소에 붙잡혀 있는 일이 없게 했다.

조 소장은 선불금을 뜯어내기 위한 업주들의 행태가 그렇게 악랄할 수 없단다. 피해여성을 노숙자와 결혼시켜 전세대출을 받게 해 빼앗고, 피해여성을 비행기에 태워 기내에서 카드로 물건을 몽땅 사게 한 뒤 그 물건을 팔아 돈을 챙기기도 한단다. 물론 카드빚은 고스란히 피해여성에게 돌아간다.

독버섯처럼 번진 성매매업소들과 힘든 전쟁을 하느니 차라리 성매매를 양성화하는 공창제를 하자는 의견에 대한 그의 의견은 단호하다. “성매매 문제를 남의 문제로만 보는 사람들이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해요.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돈 없는 결손가정에서 자란 저학력층이에요. 이런 아이들이 희망을 품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지는 못할 망정 공창제 운운하는 건 언어도단이에요.” 그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직접 유리방 안에 들어앉아 자기 몸을 팔 수 있다면 공창제를 도입해도 될 것”이라며 성매매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를 부탁한다.

“사람은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에요. 회사 동료가 어젯밤 돈을 주고 여자를 샀다는 말에 웃어넘기거나 심지어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순간의 쾌락을 위해 고귀한 인권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을 순 없는 거에요. 성매매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범죄에요.” www.dasi.or.kr (02)814-3660

/김일환기자kevin@hk.co.kr

■'성매매 처벌법' 23일 시행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해 23일 시행되는 성매매 알선 등 처벌법은 위계ㆍ위력, 인신매매, 마약중독 등 억울하게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을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 자발적 성매매 여성과 달리 형사처벌에서 제외한다. 피해여성을 오히려 처벌하던 ‘윤락행위방지법’에서 진일보했다는 평을 받으며 여성계의 대대적 환영을 받은 법.

또 피해여성이 업주에게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 업소를 힘들게 빠져나온 여성이 포주에게 진 빚 때문에 사기죄로 몰려 다시 업소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없게 했다. 여성의 타락한 행위만을 강조한 ‘윤락’이라는 용어 대신 가치 중립적인 ‘성매매’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도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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