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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홀로 서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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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홀로 서 있는 나라

입력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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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외톨이다.” 최근 주한 독일대사의 말이 착잡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자칫 우월감의 과시이거나, 우리에 대한 조롱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통점을 용기 있게 진단한, 그의 투명한 선의를 믿는다. 한나라의 대사가 허투루 마음을 드러내겠는가. 미하엘 가이어 대사는 진심으로 충고하고 싶었을 것이다.“독일은 주변국이나 북미 국가들과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 속에 있지만, 한국은 거의 홀로 서 있는 것과 같다. 독일이 통일되었듯 한국도 통일을 기원하고 있지만, 관련국과 관계가 강력하지도 않고 우호관계도 독일과 다르다. 미국과 대등한 파트너십은 과거 독일의 적까지 묶어주었다. 한국은 이런 문제에서 초기단계이며, 동북아 평화공동체로 가는 길도 먼 것 같다.”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핵심은 ‘통일과 고립’을 꼬집는 지적일 것이다. 그 쓴 소리는 통일을 먼저 이룬 국민이 아직 못 이룬 국민에게 들려주는 진단이기 때문이다. 통일은 어떤 계단을 밟으며 오는가. 먼저 국민의 통일열망이 고조되어 마침내 커다란 컨센서스를 이뤄야 한다. 다음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이 따라야 한다. 가이어 대사의 발언은 국내적으로는 통일열망이 충분하지 않고, 국제적 지원도 부족하다는 평가로 들린다.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그가 보았으면 하는 다른 면도 있다. 30년에 걸친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남북관계는 개선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으로 1994년의 남북정상회담은 성사 직전 무산되고 말았으나, YS는 회담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뒤 이어 DJ의 ‘햇볕정책’과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 햇볕정책을 승계한 현 정부의 개혁정책으로 근래 정치가 제 자리를 찾으며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통일을 이뤄야 경제적으로 거인이 된 이웃 나라와 선의의 경쟁도 해볼 만하다.

지금의 뜨거운 국가보안법 논란은 남북관계 개선과 인권수호의 연장선상에 있다. 폐지론에 따르면, 보안법 상의 ‘반국가단체 구성ㆍ가입’ 조항은 형법상 내란 또는 외환 예비음모나 범죄단체 조직죄로도 처벌이 가능하다.‘잠입ㆍ탈출’은 출입국관리법이나 간첩죄로 다스릴 수 있으며, ‘찬양ㆍ고무’ 역시 내란 또는 외환의 선전ㆍ선동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나 소요죄로 처벌할 수 있다.

우려하는 범죄를 다른 법으로 다스릴 수 있는데, 부도덕한 권부의 정권연장 수단이었던 악명 높은 법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독재ㆍ군사정권 아래서 보안법의 이름으로 많은 정치수들이 처형되었다. 최근 한 신문의 여론조사는 국민의식의 큰 변화를 보여준다. 66%의 응답자가 보안법을 개정하거나 보완해야 한다고 답했다. 완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14%)도, 그대로 둬야 한다는 견해(16%)와 비슷했다. 개정ㆍ폐지 주장이 존치보다 4배 이상 많은, 민주적 성숙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통일열망이 높아지면 번번이 보수 세력이 색깔론을 들고 나와 통일고리를 끊곤 한다. 지난 주 전직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등 보수 인사 1,500명의 시국선언도 통일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비(非)원로적 행위였다. 그들은 운동권 출신 386세대를 비난하고, 6ㆍ15 남북공동선언을 파기하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탄핵소추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군사정권과 냉전체제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의 반발이 이유 없다고 할 것인가. 우리 역사는 아직도 냉전시대의 어둠에 갇혀 있다.

국민의 양식을 신뢰해야 민주주의도 성장한다. 이념적으로 바둑돌, 혹은 볼록렌즈 같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믿는다. 온건한 좌우세력이 중앙에 두껍게 포진해 있고, 급진적 좌우 세력은 주변으로 보다 얇게 퍼져, 가볍게 흔들리다가도 이내 균형을 찾아가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또 다른 독일인 울리히 벡의 이론대로, 그 전까지 우리는 ‘위험사회’의 불안한 주민인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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