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출구로 내몰리는 병사들 사이를 헤집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서면 10달러, 2달러, 100달러짜리 미국 지폐 그림을 배경으로 삼은 애니메이션이 흐른다. 지폐 그림 속에 파고들어간 작가는 미국 독립기념관을 찾아 헤매고,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타향살이’가 울리는 가운데 허탈하게 독립기념관을 나선다. 인권운동가 최완욱 광주인권운동센터 사무국장과 파트너십을 발휘한 전준호의‘또 다른 기념비를 위하여’다.세계적 패션그룹 프라다의 미우차 프라다 회장을 참여관객으로 맞이한 이경호의‘… 행렬 달빛소나타’는 현장에서 1,000원에 판매하는 프라다 명품 종이봉투에 싸구려 뻥튀기를 담아주는 발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웅장한 그리스 민중음악이 울려 퍼지는 전시장에서는 낡은 뻥튀기기계가 계속 토해내는 뻥튀기를 관객이 맘껏 집어먹는다.
10일 막을 올린 제5회 광주비엔날레가 도입한‘참여관객’제도는 문화소비자의 위치를 묻는 파격적 실험 의식으로 일단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다. 중외공원내 비엔날레관에 마련된 주제전‘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에서는 미술전시장에서 보기 드문 광경을 접하게 된다. 전시작 안내표지에 작가와 참여관객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있다. 주제전에 참가한 41개국 81팀 가운데 60팀의 작품은 참여관객과 동반작업을 거쳐 내놓은 성과물이다.
미우챠 프라다 회장, 이탈리아 좌파사상가 안토니 네그리, 시인 고은, 문규현 신부, 환경운동가 지율 스님, 안경환 서울법대 교수 에서 나주배 농사를 짓는 권호상, 탈북민 이전용씨, 초등 6년생 주하현 군에 이르기까지 인종 계급 직업 등 다양한 계층이 참가했다. 60쌍의 참여관객-작가 커플 중 약 70%는 별탈 없이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했지만, 나머지는 불협화음을 빚으며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틈을 드러냈다. 일본 미야지마 타츠오는 고바야시 야수오 도쿄대 교수로부터 물 없는 일본의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시간의 강, 광주를 위하여’를 출품했다. 시인 고은과 파트너가 된 박불똥은 연탄과 나무를 소재로 산업사회의 모순을 표현한‘불후, 진폐증에서 삼림욕까지’를 내놓았다.
그러나 ‘먼지’‘물’‘먼지+물’‘클럽’등 4개 소테마로 나뉜 주제전이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의식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지는 의문.‘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에 윤회에 바탕을 둔 자연적 질서의 힘을 담고자 했지만 소멸을 상징하는‘먼지’를 주제로 한 1전시실에서 출발해 생성의 본질을 의미하는 ‘물’을 표현한 2전시실로, 3,4전시실 ‘먼지+물’로 이동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인상이다. 11월13일까지. (062)608-4295
/광주=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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