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선거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만약 11월 2일 미 대선의 결과를 외신들이 이렇게 타전하면 세계의 반응은 어떨까. 일단 각국 지도자들의 축하가 쇄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축하에는 진심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럴 것 같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역시 전 세계로부터 축전이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진심이 담겨져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부 국가는 빼야겠지만.
이런 예단은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보다는 케리 후보의 당선을 바라는 국가가 35개국 중 30개나 된다는 얼마 전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릴 수 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글로브스캔이 7, 8월 두 달간 35개국 3만4,3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필리핀 나이지리아 폴란드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의 국민들은 부시를 싫어하고 있었다. 독일 프랑스는 물론이고 미국의 열렬한 동맹국인 영국의 국민들조차 케리를 선호했다. 일본도, 중국도 ‘부시는 싫다’는 반응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식자층을 중심으로 반부시의 정서는 강하게 형성돼 있다. 특히 미국 언론을 대표하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는 미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 중에도 ‘부자들의 파티’‘동맹이 아니면 모두가 적인가’라는 칼럼 등으로 비판적인 날을 세웠다.
이쯤 되면 부시가 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고 부시가 우세하다.
왜 이럴까. 세계가 싫어하고 미국의 상당수 지식인들이 경멸하는 부시를 미국의 보통사람들은 왜 지지하는가. 많은 이유 중 포인트는 테러와의 전쟁일 것이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전쟁 중에 사람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에 빠진다”고 분석한 바 있다. 불안한 미 국민들에게 테러전을 수행하는 부시가 믿음직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게 전부일까. 전쟁 수행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시의 지지도가 높다면 미 국민들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이다. 그가 정말 엉터리라면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을 수는 없다.
설령 부시가 철학이나 사상이 부족한 지도자라해도 그 뒤에 서있는 참모와 각료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부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노회한 꼴통으로만 보이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딕 체니 부통령, 바늘로 찔러도 미동도 없을듯한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미국의 보수론자들 사이에서 이론가로 통한다.적대적 국가들의 선의를 믿지 않는 접근법, 힘만이 미국의 국익을 지킬 수있다는 신념 등은 많은 국민의 동의를 얻고 있다. 이것이 부시의 지지도를 받치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부시의 뒤에 서있는 이들을 보면서 굳이 한나라당을 떠올려 본다. 둘 다 보수를 지향하지만 한나라당은 건강하지 않다. 아직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과오들과 연결돼 있어 도덕적으로 하자를 안고 있고 이론적 기반도 없다. 변신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엄연히 미국에서 보수론자들이 강세를 보이는데도 한나라당은 여전히 지역주의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한나라당으로 가지는 않는다.한국 정치의 시험지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싫냐, 좋냐는 O, X 문제만 있을뿐이지 한나라당은 아예 답안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한나라당이 건강한 보수주의자로 한 축을 형성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몸부림을 보고 싶다.
이영성 국제부장 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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