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파견근로자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법률의 개정 및 제정안을 발표했다. 주요내용을 보면 과거 26개 업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던 것에서 건설, 의료, 선원, 유해 사업장 등 일부업종을 제외한 전업종에 파견근로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파견기간도 최장 2년으로 하던 것에서 3년으로 늘리고, 기간제 근로자도 기간 상한을 1년으로 제한하던 규정을 폐지한다. 이번 입법을 위해 정부는 몇 년 동안 노사정위원회의 논의나 각종 토론회를 거쳤고 일본이나 유럽연합(EU) 선진국들의 사례도 참고해 왔다.정부는 이번 입법의 취지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이고 이를 위해 법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나 노동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 절차를 신설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법이 노동시장에 미칠 주요한 영향은 비정규직 확대를 가져오는 노동시장 유연화이다. 실제로 생업에 바쁜 근로자들이 차별시정을 위해 법에 의존하는 사례는 흔치 않을 것이다.
파견근로의 내용을 보면 이런 고용의 확산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작년 8월 현재 파견근로자는 정규직 근로자의 60%정도의 임금을 받고 평균근속연수는 정규직의 3분의1에도 못 미친다. 또 파견근로자를 쓰는 사업체는 1명의 파견근로자를 쓰는데 정규직 초임수준에 해당하는 15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한다. 이중에 100만원 정도가 파견근로자에게 지불되고 나머지 50만원 정도를 파견업체의 소개 수수료로 지불한다. 결국 파견근로자는 노동의 정당한 대가보다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한다.
업체가 파견근로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해고가 용이하다는 이유와 고용에 따른 준 고정비용, 즉 상여금과 각종 휴가비 등을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이나 여성실업의 감소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이 높은 형태의 고용창출이라는 문제가 있다.기업경쟁력에도 단기적으로는 비용절감의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파견근로자의 낮은 숙련도나 헌신성 때문에 장기적 효과는 부정적이다. 결국 파견근로의 확대는 파견업체를 살찌우고 사용사업체에게 주로 이득을 주는 측면이 강하다.
정부의 이번 결정의 한 근거가 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한 논쟁도 잘 따져봐야 한다. 특히 이번 정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가 한국의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 것에 근거하는데 이 통계는 신뢰성이 의문시되어 왔다. 엄밀히 따지면 한 나라의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임금유연성, 근로시간이나 근로자 수와 관련된 수량적 유연성, 근로자들의 숙련과 관련된 기능적 유연성, 근로일수나 초과근무 및 퇴직과 관련된 근로시간 유연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이 기준별로 각국의 노동시장의 유연성 순위가 다르고 각 기준에 얼마의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전체 순위도 달라진다. 한국의 경우 현재 평가보다 실제 유연성이 높을 수 있다.
이번 정부조치는 국내에 투자한 다국적 기업들의 불평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투자대상국의 좋은 조건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은 채 불평불만만을 늘어놓는 것이 다국적 기업들의 생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서구 선진국들이 중심인 OECD국가들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하는 배경은 수십 년간 고도성장과 강력한 노조의 영향력 하에 노동자의 권리가 신장되고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시장에 둘러싸인 서구 기업들은 한국, 대만, 중국 등의 산업경쟁력의 도전을 받으면서 생존을 위해 시장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우리 노동시장의 역사적 발전 경로는 이와 크게 다르다. 정부는 좀 더 장기적 시각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득실을 따지고 신중하게 정책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정주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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