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말, 우리 가족은 매년 그렇듯이 집안 어른들을 뵈러 강원도로 떠난다. 추석을 맞아 차례상도 준비하고 반가운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서다.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너무도 당연한 가족의 의무로 보인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여자들한테 그렇다.
한가위 명절을 처음 접한 것은 4년 전이었다. 한국인 남편을 만난 이후 시댁 어른들과 함께 맞는 첫 추석이었다.
당시 나는 평소 4시간이면 가는 도로에 넘쳐나는 귀성행렬에 시달리며 무려 19시간이나 달린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갖가지 제사 음식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도 제사라는 풍습의 타당성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제사의 진가를 이해하고 있다. 단순히 조상들에게 절을 하고 무사히 곡식을 거둘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한 감사의 의미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한국인들의 가족중심관이 집약된 것임을 깨닫고 있다. 사실 내 고향에도 비슷한 풍습이 있다. 추수감사절이 바로 추석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 중요성이나 의미는 왠지 추석이 더 큰 것 같다.
나는 매년 이맘때 꼬불꼬불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가면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겹겹이 밀려 있는 버스와 승용차, 그 속에서 타고 있는 많은 가족들. 정말 민족 대이동이라 할 만하다. 교통체증으로 귀향길은 짜증이 극에 달할 만하지만 나한테는 가치 있는 경험으로 기억된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과 숨결을 생생하게 관찰할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그 지루한 시간을 차 속에서 견디는 한국인들의 모습에서 핏줄이 얼마나 뜨겁게 연결돼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혈육에 대한 헌신적인 국민성이 감탄스러웠다.
긴 시간을 보내서 가야 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일을 도와야 하지만 나는 추석이 기다려진다. 정신 없는 서울 생활로 단순하고 무미건조해지는 일상이지만 명절 때만큼은 뿌듯한 평화로움을 맛보기 때문이다.
여자 친척들과 여러 가지 전통음식을 만들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친지들의 새로운 소식도 듣는 추석은 대가족의 일원으로서 친척들과 더욱 가까워질수 있는 기회를 안겨 주는 고마운 존재다.
마가렛 키/미국인·홍보대행사 에델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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