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 9월13일 독일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이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그녀의 성(姓)은 비크였으나 21세에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결혼해 슈만 부인이 되었다. 두 사람의 결혼이 쉽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스승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가 이 결혼에 완강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로베르트 슈만은 법원에 결혼 허락을 위한 소송을 냈고, 고통스러운 재판 과정이 마무리된 뒤에야 클라라와 결혼할 수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든, 이 결혼은 피아니스트로서의 클라라에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음이 곧 드러났다. 남편의 작곡에 방해가 될까 봐 클라라는 집에서 피아노를 칠 수도 없었고, 남편이 그녀를 늘 제 곁에 두려고 했던 터라 콘서트 여행도 자주 할 수 없었다. 어쩌다 여행을 하게 될 때는 남편과 꼭 동행했다. 클라라는 음악과 멀어지는 동안 아이를 여덟이나 낳았다. 이미 결혼 무렵부터 정신장애 증세를 보였던 로베르트 슈만은 결혼한 지 17년 만인 1856년 46세로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쳤다.
클라라는 남편이 죽은 뒤 40년을 더 살았다. 남편의 죽음이 클라라에게 얼마나 큰 슬픔을 주었든, 이 죽음은 피아니스트로서의 클라라에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클라라는 결혼 생활 동안 소홀히 했던 피아노로 다시 돌아와 정력적으로 연주 활동을 했고, 이내 리스트에 견줄 만한 명연주가라는 평판을 얻게 됐다. 그녀는 특히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의 뛰어난 해석자로 이름을 날렸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브람스에게 열네 살 위의 클라라 슈만은 동경의 여인이었다. 1896년 5월20일 클라라 슈만이 죽자 브람스는 비탄에 잠겨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내가 진정 사랑했던 단 하나의 여인이 오늘 땅에 묻혔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