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경기 화성시 장덕동 현대ㆍ기아 연구개발본부(R&D Division) 내 디자인연구소. 호주 시드니의 명물 오페라하우스를 통유리로 만들어 옮겨놓은 듯한 겉모습의 이 건물은 외부인은 물론 현대ㆍ기아차 내부 직원들도 출입할 수 없는 1급 보안지역이다. 시장에 출시되기 전까지 극비에 부쳐지는 신차들의 디자인과 최종 품평회가 모두 이 건물에서 이뤄진다. 입구와 복도마다 늘어선 보안요원들은 수시로 출입자들이 카메라, 녹음기, 디카폰(디지털카메라휴대폰) 등을 갖고 있지 않는 지 미국 공항 출입국 심사보다 더 철저하게 점검했다.
보안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지문인식시스템이 장착된 4층 ‘실내 품평장’으로 들어서자 디자인연구소에서 만든 시제품 품평회를 갖는 농구장 크기의 원형 홀이 나타났다. 이곳은 자연 채광 상태에서 제품을 평가하기 위해 25m 높이의 천장을 유리 돔으로 만든 뒤 돔 내부 중앙에서 외곽으로 다시 레일을 24개나 깔아 각 레일마다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버튼을 누르면 블라인드가 유리 돔 중앙에서 벽쪽으로 내려가며 채광양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레일을 움직이는 대신 블라인드 각도를 조절할 수도 있어 계절별, 시간대별, 음지와 양지별 색감의 차이를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량 7대를 동시에 턴테이블에 올려 돌려가며 품평할 수 있는 규모다.
실내 품평장 옆에는 야외 품평장과 ‘3D 영상 품평장’도 있다. 컴퓨터와 3D 영상 기술을 활용, 신차 디자인 후보를 광화문 앞, 뉴욕 5번가, 파리 뒷골목 등의 가상현실에서 360도 회전시켜가며 심사하고 점검할 수 있다.
디자인연구소 건물을 나오면 세계 최대 규모의 풍동시험장이 자리잡고 있다. 풍동시험장이란, 말 그대로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차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등을 테스트하는 곳. 자동차의 공기 저항과 바람 소리의 실내유입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경 8.4m의 대형 송풍기에서 시속 200㎞의 바람을 내보내며 실험을 한다. 바람의 흐름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하얀 색깔을 넣은 연기를 바람과 함께 내 보낸다. 차량의 외곽선을 따라 유선형처럼 바람이 흘러가야 자동차의 저항이 적다. 특히 실험차량 밑에 설치되는 저울은 파리가 앉았는 지 여부를 감지할 정도로 높은 정밀도를 자랑한다. 1999년 450억원을 들여 시험장을 건설하기 전에는 풍동시험을 위해 유럽의 유명 자동차 회사의 풍동시험장을 하루에 5,000만원씩 주고 빌려 써야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보안 유지 등이 안돼 설움과 불이익이 많았다는 것이 현대차 관계자의 귀띔이다.
충돌실험장도 연구개발본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시설. 수백여개의 센서가부착돼 1억원을 호가하는 인체 크기의 모형 ‘더미’(dummy)를 앞좌석에 앉힌 쏘나타가 50m 후방에서 시속 48㎞(30마일)의 속도로 달려와 콘크리트 고정벽에 정면 충돌하는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시속 48㎞ 속도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차량 앞으로 가보니 고정벽에 충돌 뒤 5m나 뒤로 밀린데다 보닛도 절반이나 구겨져 있었다. ‘쏘나타’가 출시되기까지 이 같은 충돌실험이 200여회 정도 실시됐다. 양산되기 전의 시제품차여서 차량 가격도 만만치 않은 점을 감안하면 충돌 시험에만 수백억원이 들어간 셈이다.
이날 연구개발본부에서는 VDC(Vehicle Dynamic Control) 체험과 고속주행체험 등의 행사도 진행됐다. VDC란 급가속, 급회전, 급정지시에도 차량이 전복되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운전자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차량의 자세를 올바르게 잡아주는 첨단 장치. 1초에 30번씩 차량의 자세를 점검해준다. 실제 이날 물이 뿌려진 길 위를 고속 주행하다 급제동을 걸어도 VDC가 장착된 ‘쏘나타’는 뒷바퀴가 차량의 자세를 똑바로 잡아주며 바로 멈춰섰다. 고속주행로는 노면이 경사가 져 최고 시속 250㎞의 속도로도 달릴 수 있는 곳이다. ‘쏘나타’는 시속 200㎞가 넘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연구개발본부 곳곳에 수입차가 보이는데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전 세계자동차 회사의 차량을 가져다 시험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항상 300대 정도의 수입차가 본부 내에 있다”고 말했다. 현대ㆍ기아 연구개발본부는 이미 세계 톱5를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고 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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