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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진경 10亭/풍류따라 강물따라 '정자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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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진경 10亭/풍류따라 강물따라 '정자 순례'

입력
2004.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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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시름일랑 도도한 저 강물 위에 띄워보내고 예서 잠시 쉬었다 가게나.’ 경치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들어앉아 제 스스로 풍경이 되는 것이 정자다. 한강도 예외는 아니다. 소악루, 망원정, 용왕봉저정 등 서울의 조망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정자 10곳이 예로부터 ‘한강진경 10정(亭)’으로 불리며 강과 한 몸을 이뤄왔다. 성큼 들이닥친 가을에 문득 세월의 시름이 느껴진다면 옛 선인의 풍류도 느껴볼 겸 정자 순례에 나서보자. 정자마다 사연도 구구하다.

세월 희롱하며 시름 날려보내니

겸재 정선의 산수화로 유명한 ‘소악루(小岳樓)’는 강서구 가양동 궁산에 자리잡고 있다. 안산(鞍山), 인왕산, 남산, 관악산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인지라 예부터 명사들이 주로 찾아와 노닐던 곳이다.

정자 위에 오르면 올림픽대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장난감처럼 보이고 세월이 멈춘 듯한 적요 속에 상암동 일대와 난지도까지 내려다보인다.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했던 허가바위(서울시 문화재 11호)와 양천향교(서울시 기념물 8호) 등이 정자 오르는 길에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1994년 경관과 조망을 고려해 현 위치에 복원됐다.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 위치한 ‘망원정(望遠亭)’은 세종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이 지은 정자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쪽문을 지나 층층이 놓인 돌계단을 올라서면 울창한 버드나무 숲에 가린 정자의 자태가 드러난다. 성산대교와 선유도, 양화대교 일대를 마주보고 있어 야경이 특히 일품이다.

거울 같은 물위에 마음을 비춰보니

‘용이 뛰놀고 봉이 날아다닌다’는 뜻의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현륭원)를 참배하러 다닐 때 노들강에 배다리를 설치해 건너와 잠시 쉬던 행궁(行宮). 마당 한 켠에 그림으로 남아있는 정조의 발자취가 흐르는 강물처럼 차분했던 임금의 속내를 느끼게 해준다.

흑석동에 위치한 ‘효사정(孝思亭)’은 강 건너 이촌지구부터 남산, 용산일대를 조망할 수 있고,특히 강남ㆍ북을 잇는 동작, 반포, 한남대교 건너까지 한강이 휘돌아보이는 게 특징. 91년 광진구 자양동 현대아파트 뒤에 복원된 ‘낙천정(樂天亭)’은 세종이태종과 함께 왜구 소탕대책을 세우고, 대마도를 평정하고 온 이종무 장군에게 상을 내렸던 곳이다.

사라진 정자엔 사연만 남았으니

한강 10정 중 5곳은 파란만장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용산에 터가 남아있는 심원정(心遠亭)은 임진왜란 때 명군의 압박으로 왜군과 화의를 이루었던 곳. 한남동과 보광동을 가르는 남산 능선 위에 자리한 ‘제천정(濟川亭)’은 조선왕실 소유로 왕들이 즐겨 술자리를 갖던 곳으로 퇴계 이황이 벼슬을 내놓고 한양을 떠날 때 송강 정철이 이곳에 올라 그리운 심정을 노래로 읊었다고 한다. 한명회가 지었던 정자는 소실되고 압구정동이라는 부촌의 이름으로만 남은‘압구정(狎鷗亭)’과 한남대교 북단의 ‘천일정(天一亭)’도 한강 10정 중 하나.

단종이 영월로 귀양가며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는 ‘화양정(華陽亭)’은 한때 단종의 원혼이나마 돌아오기 바라는 신하들에 의해 ‘회행정(回行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현재 화양동에 수령 650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그 터만 남아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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