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호흡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내고
피어난 꽃은 한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맨발/문태준 지음
창비 발행·6,000원
시인 문태준(34)의 시의 목소리를 일러 이성복 시인은 “늙은 아이 같고,아이 늙은이 같다”고 했다. 못해도 50~60년쯤은 꼬박꼬박 고단하게 살아내야 엿볼 수 있을 삶의 비의를 일찌감치 훔쳐봐버린 듯한 그가, 능란한 서정의 시어로 빚은 두번째 시집이 ‘맨발’이다.
이 노회한 젊은 시인은 뭇 물성들이 그림자를 늘이고 넓혀 마침내 제 그림자에 제가 덮이는 시간, 산지사방 모두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집요하게 노래한다. 그에게 어둠은 숱한 생명이 각각의 삶의 이력으로 여무는 시간이고, 도드라진 놈이나 무녀리나 하나로 그 품에 안기는 평등한 시간이다.
‘어두워지는 순간’은 저물 녘 어머니가 저녁 찬거리 뜯으러 먼 밭을 다녀오는 동안, 혼자 남아 뜰에 있는 개와 멧새 아카시아 호미 등등을 노래한 서정시다. 시인은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자 하나 너무 많다.
게다가 ‘개는 늑대처럼 오래 울고, 멧새는 여울처럼 울고…’ 모든 게 달리 있어서 난감한데, 이번에는 시인의 눈에 그 모든 것들이 지닌 소중한 이력들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멧새만 해도 그냥 멧새가 아니라 ‘…좁쌀처럼 울다가 조약돌처럼 울다가 지금은 여울처럼 우는…’ 그렇게 성장해 온 멧새다.
시인에게 어둠은 이 모든 생명들의 이력들이 만나는 시간이고, ‘저녁에 대해 여럿이 말하다’란 시에서 말하듯 까마귀와 감잎 들고양이, 나와 나의 아버지가 제각각 한 마디씩 거들 말이 있는 두루 공평한 시간이다.
그에게 어둠은 또 생계의 고달픔을 감싸 안아주는 시간이다. 작은 언덕 늙은 팽나무 한 그루가 섰는데, 저물 녘 낮에 흩어졌던 새들이 그 나무에 날아든다.
‘한 놈 한 놈 한곳을 향해 웅크려 있다/ 일제히 응시하는 것들은 구슬프고 무섭다/ 가난한 애비를 둔 식구들처럼/ 무리에는 볼이 튼 어린 새도 있었다/ 어두워지자 팽나무가 제 식구들을 데리고 사라졌다(‘팽나무 식구’)” 가난은 팽나무가 어둠으로 제 새끼를 감싸 안듯, 막막한 절망이나 분노의 가난이 아닌 백석의 시처럼 ‘따사로운 가난’이다.
‘산수유나무의 농사’라는 시편을 보자. 노란 꽃을 터뜨린 나무는 제 몸피 만큼의 노란 그늘 농사도 짓는데, 시인은 그 그늘의 소출을 달아본다.‘끌어 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다.
표제작이자, 시인들이 ‘지난해 최고의 시’로 꼽은 ‘맨발’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의 움직임에 가난의 서정을 빚댄 절창. 시는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고 맺고 있다.
그는 “깊이 응시해서 드러나는 물성들의 내력, 그 과정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서시’라는 부제를 단 ‘햇차를 끓이다가’가 그 다짐으로 보인다. ‘마르고 뒤틀린 찻잎들이 차나무의 햇잎들로 막 피어나는 것이었다…’
우려지며 피어나는 ‘젖고 푸른 눈썹 같은’ 찻잎에서 그는 ‘누가 나에게 이런 간곡한 사연을 들으라는 것인가’ 하고 자성한다. 해서, 그가 엿본 삶의 비의는 선문답처럼 두루뭉실한 추상이 아니라, 생명의 세밀한 과정이고 구체적인 내력으로서의 삶에 닿아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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