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 학교 인질극 동영상에서 머리 뒤로 두 손을 올린 채 공포에 떠는 모습으로 등장했던 소년이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영국의 타블로이드판 일간 선은 9일 인질극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준 게오르기 파르니예프(10)를 찾아내, 기적 같은 행운이 거듭되면서 가벼운 상처만 입고 생존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진압 당시 처음 터진 폭탄 가까이 앉아 있었던 게 되려 첫번째 행운이 됐다. 파편이 모두 게오르기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는 것. 게오르기는 “범인들이 폭발물을 터뜨리고 총을 쏴 댔는데 전 하나도 안 다쳤어요. 친구들이 많이 죽었는데 저도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체육관은 삽시간에 비명과 총격으로 아수라장이 됐고 게오르기는 폭발 충격에 눈이 부시고 머리가 멍했다. “쥐 죽은 듯 있어야 산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는 게오르기는 무슨 힘에 이끌려서인지 벌떡 일어나 인질범에게 “물 먹어도 되요”라고 물었다. 호의였는지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당황한 탓인지 인질범은 뜻밖에 게오르기를 막지 않았다. 두 번째 행운이었다.
체육관을 나와 식당으로 가는 순간 건물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농구 골대에 있던 폭탄이 터진 것 같아요. 지붕도 무너졌어요. 체육관에 돌아오니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어요.” 인질범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인질들에게 마구 총을 쐈지만 이번에도 총탄은 게오르기를 비껴갔다.
게오르기는 무릎에 파편상을 입었을 뿐 거의 다치지 않았다. 함께 억류됐던 이모와 사촌동생도 모두 살았다. 그러나 노인과 어린이가 눈 앞에서 사살되고 시신이 조각나는 참혹한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정신적 충격 탓인지 게오르기의 ‘생존기’는 인터뷰 때마다 엇갈린다. AP통신은 “넋이 빠진 것처럼 보이고 얘기에 두서가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 때문에 생존 확인 보도에 그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선지는 자신이 동영상에 나온지도 몰랐던 게오르기에게 원격조정 자동차를 선물한 뒤 동영상에서 찍은 사진을 들이대면서 끔찍한 기억을 거듭 되살리게 했다. 다른 언론들도 선지 보도 이후 무릎 수술을 위해 모스크바로 가는 게오르기를 공항까지 쫓아가 구급차 안에서 취재 경쟁을 벌였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