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견해를 지닌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그 견해가 정서에 바탕을 두었을 땐 더 그렇다. 그 때, 판단 주체는 있는 사실을 보기보다는 보고 싶은 사실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메시지는, 아주 섬세히 짜여졌을지라도, 그 메시지에 본디 동의하고 있던 사람들끼리의 신념을 강화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기록물이 겨냥하는 것은 오는 11월 조지 부시2세의 낙선이다. 무어는 이 기록물에서 평균적 이성·감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꺼이 납득할 만큼 유창하게, 부시가 재선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고 있다. 부시가 9·11 참사 직후 미국의 빈 라덴가 사람들을 왜 그리고 어떻게 탈출시켰는가,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 그리고 사우디 왕가는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 참사 직후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을 제쳐두고 대뜸 이라크를 지목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는가, '코믹누아르적'인 미국 핵심 권력자들이 대자본과 어떻게 얽혀 있고 그들은 이라크에서 어떤 이득을 취하고 있는가, 전쟁터의 미군은 왜 주로 하층계급 출신인가에 대한 무어의 설명을 듣고 나서도 부시 정권과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국의 어기찬 공화당 지지자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 견해는 흔히 감성에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자들에게 비디오로라도 이 영화를 한 번 보기를 권한다. 이 영화는 지금 백악관과 미국 행정부 주변에 포진해 있는 인물들이 얼마나 위험한 세력인지를 깔끔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책을 더 즐기는 독자들에게는 한겨레 김지석 논설위원의 최근 저서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교양인)를 권하고 싶다. 그나저나, 케리는 과연 부시보다 나을까?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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