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1회를 맞은 한국음악콩쿠르는 중고생 연주자들이 실력을 겨루는 공정하고 권위있는 경연으로서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갈 미래의 주역들을 배출해왔다. 올해 대회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4개 부문에서 11명의 입상자가 나왔다.본선 채점은 10~25점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서 최저점과 최고점을 뺀 나머지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결정했다. 단 비올라 부문은 심사위원 과반수의 결정으로 1위 입상자 없이 2위와 3위만 선정했다. 본선 지정곡은 피아노는 브람스 소나타 2번, 바이올린은 비외탕 협주곡 4번, 비올라는 브람스 소나타 1번, 첼로는 랄로 협주곡 D단조로 모두 전악장 연주였다.
예선은 6ㆍ7일, 본선은 8ㆍ9일 서울 종로구 부암아트홀에서 치러졌으며, 모든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대견한 모습을 보여였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본선 심사위원 명단
● <피아노> 신수정(서울대) 김준차(연세대) 이혜경(중앙대) 노미경(이화여대) 박미애(성신여대) 한형실(경원대) 교수 피아노>
● <바이올린> 현해은(서울대) 송재광(이화여대) 강대식(단국대) 김광군(경원대) 김영목(경희대) 홍종화(숙명여대) 김선희(충남대) 교수 바이올린>
● <비올라> 장은식(추계예대) 위찬주(한양대) 오순화(한국예술종합학교)이정훈(협성대) 교수, 김도연(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 단원), 이미경(KBS교향악단 수석) 비올라>
●첼로> 윤영숙(서울대) 우지연(국민대) 임경원(성신여대) 강해근(한양대) 박윤수(추계예대) 교수, 이정근(서울시향 수석)
협찬:LG전자
◇제 31회 한국음악콩쿠르 본선 심사평
■ 피아노/심사위원장 신수정(서울대 교수) -"어려운곡 진지하게 다뤄"
지정곡인 브람스 소나타 1번은 중고생이 치기엔 버거운 곡이어서 참가자가 9명밖에 안됐다. 하지만 본선에 진출한 5명 중 준비가 덜 된 듯한 1명만 빼곤 다들 끝까지 소화해내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전반적으로 악보에 충실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줬다.
1위 허재원은 특히 음악성이 뛰어났으며, 확신에 찬 해석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아주 훌륭한 연주를 했다.
2위 김지혜의 연주도 매우 지성적이면서 확신에 찬 것이었다.
3위 김보람은 따뜻하고 브람스다운 톤이 인상적이고, 소리가 아주 좋다. 이들이 톤이나 터치에 대해 더 생각한다면 피아니스트로 대성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바이올린/심사위원장 현해은(서울대 교수)-"인상깊은 기교 연주"
참가자 35명 중 5명이 본선에 올라 비외탕의 협주곡 4번으로 열띤 경연을 벌였다.
1위 김보림은 비외탕의 낭만적인 테마를 감미롭고 대담하게 표현했다.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3악장 스케르초의 빠른 속도를 화려하게 연주했으며, 웅장한 행진곡의 4악장에서 격렬한 화음과 빠른 16분 음표의 스피카토를 흔들림 없이 잘 연주했다. 2위 이정민은 1악장 D단조의 우울한 선율을 인상 깊게 시작했으며 안단테의 레치타티보를 아름다운 톤으로 간결하게, 기교 상 매우 어려운 3ㆍ4악장도 거침없이 자신있고 화려하게 연주했다. 3위 이아인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이 협주곡에 대한 성숙한 이해력을 보였다. 3ㆍ4악장은 리듬감이 좋았고 속도는 좀 빨랐지만 잘 연주했다. 앞으로 더 깊이 있고 원숙한 연주가 기대된다.
■ 비올라/심사위원장 장은식(추계예대 교수)-"벅찬 과제곡 무난히 소화"
브람스의 소나타는 고등학생이 연주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곡이다. 인생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것이 브람스이기 때문이다.
그 음악적 깊이를 나이 어린 학생이 표현하기란 벅찰 수 밖에 없지만, 본선 진출자들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잘 소화해냈다. 다만 음정연습 등 기본에 좀 더 충실하면서, 항상 천천히 연습하는 습관을 길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차분하게 음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들으면서 연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기 바란다.
심사위원 과반수 결정으로 1위는 내지 않았다. 2위 용상현은 침착하게 연주를 이끌었다. 3위 황여진은 볼륨도 있고, 생기있게 연주했다. 더 열심히 공부해 좋은 결실을 맺기 바란다.
■ 첼로/심사위원장 윤영숙(서울대 교수)-"표현력과 여유 아쉬워"
예년에 비해 많은 학생이 참가한 이번 콩쿠르에서 참가자들이 보여준 기량과 음악적 수준은 매우 고른 편이었지만, 개개인 고유의 음악적 표현과 여유로움이 부족하여 아쉬웠다. 랄로 협주곡으로 겨룬 본선 입상자들 역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1위 이지영은 견고하고 건강한 톤과 음악적 여유로움이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토대로 보인다. 단 빠른 패시지 일부분에서 왼손의 어려움과 속도 조절력의 미숙으로 반주와 어긋남은 아쉽다. 2위 최선유는 안정감과 저력으로 음악을 이끌어가는 강점이 돋보인 반면, 경직된 비브라토가 흠이다. 3위 김대연은 음악의 굴곡 구사가 자연스러운 반면, 좀 더 정교하고 섬세한 리듬감이 요구된다.
◇각 부문 수위 입상자
■피아노 1위 허재원(17ㆍ서울예고 3)-"관객과 교감하는 연주 하고싶어"
“본선에서 잠시 악보를 까먹는 큰 실수를 해서 1등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기뻐요. 실수하고 나니까 오히려 정신이 번쩍 나서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심사위원들이 중간에 끊지 않고 전악장을 끝까지 하게 해주어 곡에 대한 제 생각과 이야기를 다 전할 수 있었죠. 결과를 떠나서 이런 대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본 것 자체가 좋았어요. 브람스 특유의 색깔을 표현하기가 어려웠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고 음악적으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허재원군은 예프게니 키신이나 머레이 페라이어 같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한다. 키신은 어릴 때부터 천재로 불린 스타인데도 아직도 연주 하나하나에만 신경 쓰는 겸손하고 진지한 모습이 좋아서, 페라이어는 따뜻하고 감성적이면서 편안하게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을 주기 때문이란다. 허군은 “관객과 교감하며 감동을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며 수상의 영광을 신께 돌렸다.
■바이올린 1위 김보림(16ㆍ숙명여고 1)-"무대 즐기는 연주자 되고파"
“무대에 설 때마다 긴장해서 실수하곤 하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안 떨렸어요. 예선 때는 왼손이 아파서 고생했는데 신기하게도 연주 10분 갑자기 아픈게 사라졌어요. 본선 전날도 몸이 아파 연습을 못했고, 계속 아파서 아빠가 사오신 축하 케이크도 못 먹었어요. 정신력으로 버틴 거죠. 운이 좋았나 봐요. 잘 해야 2, 3등 할 줄 알았는데…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바이올린 1등을 차지한 김보림양은 예고가 아닌 인문계 학생이다.일반 교과수업을 하면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려니 힘들다.
콩쿠르를 앞둔 며칠은 학교가 결석을 허락해주는 예고 학생들과 달리, 당일만 빠질 수 있어 콩쿠르 준비도 쉽지 않았는데 1등을 해서 행복하단다. 무대에 서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를 좋아한다.
■비올라 1위 없는 2위 용상현(16ㆍ서울예고 1)-"비올라다운 풍부한 소리 욕심"
“1등이 아니어서 솔직히 좀 아쉽기만 하지만, 본선곡인 브람스가 음악공부에 큰 도움이 됐어요. 브람스는 이번에 처음 해봤는데, 테크닉은 그리 어려운 게 없지만 음악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어떻게 노래해야 할지 난감했죠. 그때마다 CD도 들어보면서 이 부분은 음이 왜 이렇게 가나 하고 열심히 생각했어요.”
올 여름은 바빴다. 7월 서울예고 오케스트라의 미국공연에 참가했고, 8월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가해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번 본선 나흘 전인 5일도 서울예고 오케스트라의 귀국무대에 섰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해내는 걸 보면 욕심이 많은가 보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엄마 밑에서 장난감처럼 바이올린을 갖고 놀며 배우다 중1 때 비올라로바꿨다. “비올라다운 풍부한 소리를 내는 것을 더 익히고 싶다”고 말한다.
■첼로 1위 이지영(17ㆍ서울예고 2)-"카잘스 같은 연주자 꿈"
"첼로가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말을 요즘에야 갈수록 실감해요. 그 소리가 너무 좋아요. 카잘스처럼 성품도 좋고 음악도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이지영 양은 "본선 준비가 덜 된 채 참가해서 1등은 예상치 못했다"며 "부모님과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본선곡인 랄로 협주곡은 중 1, 2학년 때 해봤지만 그때는 별 생각 없이 했고, 그렇게 어렵고 섬세한 곡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이 양은 자클린 뒤프레를 가장 좋아한다.
"최근 장한나 독주회에 갔다가 음악에 집중해 정말 좋아하면서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다"고도 했다. 올 여름 교내 오케스트라의 미국공연에도 참가했다. "오케스트라에 대해 또 솔로이스트가 아닌, 오케스트라 속 첼로의 역할에 대해 많이 배웠다"면서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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