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넵의 비밀편지아지즈 네신 지음·이난아 옮김
푸른숲 발행·9,000원
터키 이스탄불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소년 아흐멧에게 어느날 편지 한 통이 온다. 가족이 앙카라로 옮겨 살게 되면서 전학을 간 소녀 제이넵이 약속대로 자기를 잊지 않고 보낸 편지인데, 편지를 받아 든 아흐멧의 기쁨이란…
이렇게 시작된 두 친구의 편지는 책 처음부터 끝까지 주거니 받거니 30통가량 이어지고, 독자들은 책을 읽는 순간부터 소설속 두 친구보다 더 간절히 서로의 편지를 기다리게 된다. 편지에서 아이들은 자기주변에서 일어난 중요한 에피소드들을 서로에게 전한다. 선생님과 부모님 이웃 등 어른들의 모습과 한 반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다.
학교에 장학사가 오기로 한 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산수문제와 시를 받아 적게 한 뒤, 장학사 앞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달달 외게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장학사는 이웃 학교에서 했던 질문순서와 달리 시 받아쓰기를 먼저 시키는게 아닌가. 제이넵의 불쌍한 한 친구는 선생님과의 예행연습대로 산수문제를 펴놓은 상태….
이슬람의 대표적 풍자문학 작가인 네신의 글은 시종 해학과 웃음으로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 세상의 위선을 이야기한다. 가족과 이웃 모임이 있던 날, 어른들의 아이자랑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요 며칠 전, 우리 막내가 뭘 했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다니까요!” 학교 강당에서 전교생을 모아놓고 “여러분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시골로 내려가 그들을 위해 일하세요”라며 애국의 열정을 토로하던 한 연설가는 훗날 자기 아들의 도시 전근을 위해 청탁을 하러 다니기도 한다.
책은 아이들이 느끼는 가난과 슬픔 분노와 좌절 성차별 등을 적절한 사연들을 통해 꾸밈 없이 전달하고 있다. 1960년대에 쓰여진 열살 남짓한 아이들의 편지 형식인 이 소설은 세기를 넘기는 동안 세계 30여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이제야 한국에서 출간됐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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