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별력 측정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다." "평준화 정책에 어긋나는 대입 연좌제다." 유명대 진학률을 근거로 고교의 순위를 매겨 면접 시 가산점을 주는 방법 등으로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고교등급제를 둘러싸고 교육계가 격한 논쟁에 휩싸이고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비중 약화가 골자인 2008학년도 대입안이 나온 이후 불거지기 시작한 내신성적 고교등급제 논란은 국회 교육위원회 이주호(한나라당) 의원의 '지역 및 학교별 학업성취도 격차' 분석자료가 나오면서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표집 비율이 1%에 불과해 신뢰성과 대표성이 없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적극적인 해명과 관계없이 서울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의 학력 차이가 크다는 이 의원의 분석자료는 주목을 끌고있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들어 고교등급제를 계속 불허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의 의도대로 논란만 커진다"며 그 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해왔으나 전략을 바꿔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발표, 진화를 시도할 방침이다. 고교등급제 도입 문제를 방치할 경우 새 대입안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금명간 대학 관계자 회의를 열어 고교등급제를 막는 대신, 변별력을 높일만한 전형 방법의 도입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미 고교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울시내 일부 사립대에 대해 특별감사를 벌이거나 전형자료 제출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져 "지나친 저자세"라는 지적이 일고있다.
교육관련 단체나 일선 고교들은 고교등급제 도입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참교육 학부모회 박경량 회장은 "자신의 능력이 배제된 채 학교간 격차나 선배들의 실적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일종의 교육연좌제이며 일부 대학이 우수학생을 독식하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경기 일산 B고 3학년 주임교사는 "학교간 격차를 드러내놓고 반용하겠다는 대학의 주장이 수용된다면 학교교육 정상화는 요원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교등급제로 혜택을 보게 될 특목고나 일부 보수단체 사이에서는 찬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A외고 교사는 "세계적으로도 고교등급제는 자연스런 추세"라며 "잘 가르치려는 고교를 입시 경쟁을 유발한다는 식으로 비난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시행 주체'인 대학들은 일단 발을 빼는 형국으로 선회했다. 서울대 연세대 등 서울시내 9개 대학 입학처장들은 10일 모임을 갖고 "고교등급제 도입과 본고사 부활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그동안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고교등급제 도입에 욕심을 보여왔던 것과는 상반된다. 그러나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일부 입학처장은 "고교등급제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 입학처장 회장단 모임/상위권大선 "도입" 목소리도 나와
2008학년도 대입 개선안 발표 이후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개최돼 이목을 집중시킨 10일 서울 주요 대학 입학처장 회장단 모임은 고교등급제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입장을 정리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모임이 끝난 지 7시간이 지나서야 공식 의견을 밝혔다는 점에서 대학들간의 입장차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참석자들도 모임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고 고백했다. 상위권 대학들은 "고교등급제 금지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학력차를 고려할 수 있는 지표나 방법을 자율적으로 강구해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도입 찬성 입장을 내비친 반면, 중위권 대학들은 "학생을 성적만으로 줄 세워 뽑는 시기는 지났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 중간 위치에 있는 대학들도 다양한 절충방안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으로 미뤄 2∼3년 후 대학들이 2008학년도 대입방식을 개별적으로 결정할 때 이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결국 논란은 장기화할 여지가 있다.
참석자들이 대학 자율권을 유난히 강조했다는 점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대학 자율권이란 표현에는 고교등급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면접·논술 강화 등 고교간 격차를 반영할 수 있는 전형방법의 개발도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백윤수 연세대 입학처장은 "교육부가 금지하고 있는 고교등급제와 필답고사(본고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틀 안에서 대학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논란이 된 내용들은 다음 주 수도권 45개 대학 입학처장 전체회의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전국 1%표본 근거로 학력차 비교는 무의미"/교육과정평가원 본부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최석진 교육평가연구본부장(사진)은 10일 초·중·고교생의 지역 및 학교별 학업성취도 격차가 크고 서울의 강남·북간 학력차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내용의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 분석 자료에 대해 "신뢰성이 떨어지며 대표성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역별 학력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나.
"전국적으로 1% 표집한 결과를 두고 지역별 학력차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비교 연구 자료가 신뢰성을 가지려면 최소한 5% 표집은 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의원의 분석 자료는 대표성과는 거리가 멀다."
―평가원에서 지역별 학력차를 비교 연구한 적은 있나.
"매년 전국 단위로 무작위 표집한 학교를 대상으로 전반적인 학력수준을 평가할 뿐 이를 근거로 지역별 학력차를 연구하지는 않는다. 1%의 표집비율로는 학력차 비교 연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자료는 어떻게 유출됐나.
"당시 연구책임자였던 지방 국립대 이모 교수가 개인적으로 이 의원에게 유출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에 대해서는 교육인적자원부에 징계 요구와 함께 검찰 고발을 검토하고있다."
―평가원이 수능 결과에 대해 고교별 분석도 한다는 이야기도 돈다.
"그런 일이 없다. 분석을 할 이유도 없거니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안에 대해서는 대외비를 원칙으로 한다."
―학업성취도 표집은 어떤 기준을 따르나.
"1998학년도부터 시도교육청의 협조를 얻어 표집학교를 선정하고있다. 전년도 표집 대상이었던 학교는 제외된다. 표집은 문제지를 밀봉해 우편을 통해 해당 학교에 직접 보내고, 다음날 아침 해당 학교장 책임하에 시험을 시행한 뒤 포장해 반송하는 방법을 택하고있다."
김진각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